구상부터 탈고까지 장장 30년의 세월이 걸린 작가의 혼이 담긴 작품
"어디를 가든 썩어빠진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야. 아주 나쁜 사람을 보고 싶니? 그럼 평범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성공을 안겨줘 봐. 언제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한번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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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엄마가 자기만큼 고기와 생선을 먹고 있는지 확인했다. 여름에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수박을 먹여주겠다고 수박 밭을 일구었고, 매년 겨울이 돌아오면 가족들이 입을 외투 안에 채워 넣으라고 깨끗한 솜도 잊지 않고 사 두었다. 아버지는 혹시라도 솜이 부족하면 자기 옷에는 솜을 새로 채워 넣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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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한테는 세상에서 젤 상냥한 아부지가 있다 아이가." 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했고, 순자는 부잣집 아이가 자기 아버지의 수북하게 쌓인 쌀 포대들과 금반지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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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 중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이 낯설고 살기 힘든 땅에서 가족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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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내 밥그릇이나 잘 챙기자는 것이 조선인들이 남몰래 품고 있는 속마음이었다. 가족을 구하고, 자기 배를 채우고, 관리자들을 경계하자. 조선의 독립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셋길을 열어주자. 적응해서 살자. 이만큼 간단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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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아버지는 정상적인 팔다리를 갖고 태어난 순자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사람이었으니까. 순자의 아버지는 순자가 걷고, 말하고, 간단한 암산을 하는 것만 봐도 즐거워했다. 이제는 떠나고 안 계시지만 순자는 아버지의 따뜻한 온기와 다정한 말을 소중한 보석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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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칭찬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특히 여자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순자는 어린 여자아이라는 존재 그 자체로 귀하게 보살핌을 받았다. 순자는 아버지의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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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하는 것 외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니? 우리의 재능을 키워야 한단다. 네가 지금처럼만 한다면 아버지는 행복할 거야. 어디를 가든 넌 우리 가족을 대표하는 훌륭한 사람이 분명해. 학교에서건, 동네에서건, 이 세상 어디에서건, 넌 그런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은 중요하지 않아." 이삭이 말을 멈추고 기침을 했다. 이삭은 아이가 일본 학교에 다니기 힘들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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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2] - 이민진 (0) | 2021.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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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레베카] 가장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0) | 2021.0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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