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사태, K팝 중소돌의 기적과 분열
‘중소돌의 기적’ 그 이후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과 200억
‘큐피드(Cupid)’라는 노래 하나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게 된 피프티 피프티가 지난달 또다른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데뷔 7개월 만에 소속사 ‘어트랙트’에 전속계약 효력정지를 위한 가처분 소송을 낸 겁니다. 이렇게 빨리 뜬 그룹이 이렇게 빨리 전속계약을 깨자고 하다니. 초유의 사태인데요. 이후 양측이 각자의 입장을 밝히면서(소속사는 ‘외부 세력 탓’-멤버들은 ‘신뢰 깨졌다’) 여론까지 들고 일어났습니다.
K팝 역사상 이런 걸그룹은 없었습니다.
데뷔 4개월 만에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이후 최장기인 16주 연속 빌보드 핫100 랭크.
‘괴물 신인’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입니다.
4인조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는 지난해인 2022년 11월 데뷔했습니다.
데뷔곡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올해 2월 발매한 ‘큐피드’가 그야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틱톡에서 큐피드 영어버전에 맞춰 춤추는 숏폼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3월 ‘빌보드 핫100’에 올라간 겁니다.
종전에 뉴진스가 세운 ‘데뷔 6개월 만에 핫100 진입’이란 최단 기록을 두달이나 당기며 깼는데요.
초스피드 성공보다 더 놀라웠던 건 ‘어트랙트’라는 작은 중소기획사 소속이란 점이었습니다.
이른바 4대 기획사(하이브∙SM∙JYP∙YG)가 아닌 데 이런 대기록을 세운 거죠.
다들 ‘기적 같은 일’이라고 얘기했고, 그래서 ‘중소돌(중소기획사 소속 아이돌)의 기적’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영화 ‘바비’의 OST에도 참여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질주할 기세로 보였는데요.
2023년 6월 19일 피프티 피프티 멤버 4명이 돌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냅니다.
소속사 어트랙트와 결별하겠다는 거죠. 결별 이유는 크게 세가지.
소속사가 정산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고, 신체적∙정신적 건강관리 의무를 위반했고, 역량(인적∙물적자원 지원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소속사와 아이돌 둘 중 어느 쪽 얘기가 맞는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여서 자세히 다루긴 어렵습니다.
다만 피프티 피프티 사태가 K팝 생태계에서 여러모로 새롭고 놀라운 일인데요.
이번 사태로 드러난 K팝 산업의 단면은 무엇인지, 왜 이 사태의 결말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들여다봤습니다.
이에 어트랙트는 피프티 피프티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던 안성일 프로듀서(더기버스 대표)를 지목하며 ‘외부 세력의 강탈시도’라고 맞섰는데요. 전홍준 어트랙트 대표가 워너뮤직코리아 측과 5월에 통화했던 내용을 이달 초 공개하면서 급격히 여론이 소속사 편으로 돌아섭니다. 워너뮤직코리아 관계자가 “안성일 대표(프로듀서)한테 전에 바이아웃을 하는 걸로 200억 제안 드린 게 있다”고 하자 전홍준 대표가 “못 들어봤다”면서 “바이아웃이 뭐죠?”라고 반문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전홍준 대표가 자신의 차와 롤렉스 시계를 팔고 노모가 모아둔 9000만원까지 보태 총 80억원을 피프티 피프티에 투자했다는 사연까지 알려지면서 여론은 격화됐습니다. ‘통수돌’, ‘배신돌’이라며 멤버들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는데요.
현재 진행 중인 가처분신청 재판에선 정산자료를 제대로 줬냐 안 줬냐, 외부세력이 개입했냐 아니냐가 중요하겠지만 그건 양측 말이 워낙 달라서 여기선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대신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 중 주목해 볼 점은 이겁니다.
80억원이란 투자금, 그리고 200억원짜리 바이아웃 제안.
바이아웃:
본디 경영/경제용어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의 지분(controlling interest)을 사들이는 것이다.
기존 주주들을 "사들여서 (buyout)" 자신이 지배주주 (controlling shareholder) 가 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주주로부터의 간섭과 그들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는 셈이다.
이로부터 파생하여 임대계약이나 고용관계, 스포츠선수 계약 등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이러한 데서 쓰이는 뜻은, 돈 주고 잔존권리를 사들여서 임대기간 조기종료, 고용의무 청산, 선수계약해지 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데뷔 8개월, 투자금 80억원
이번 사태 이후 많은 이들이 놀란 점 중 하나가 전홍준 어트랙트 대표가 밝힌 80억원이란 투자금액이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하나 키워서 자리잡게 하는데 수십억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이전에도 있긴 했는데요.
대형사도 아닌 중소기획사인데도 80억원을 쏟아부었다니 좀 놀라웠죠.
그래서 이 부분을 전홍준 어트랙트 대표 본인에게 직접 물어봤는데요(왜 그렇게 큰 투자비가 드나요?).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2년 6개월(연습생 선발 이후 데뷔 준비 기간) 간 레슨비∙인건비∙제작비(음반과 음원), 헤어∙메이크업∙코디비용, 댄서비, 숙소와 연습실 월세 등등. 그리고 데뷔 이후엔 제작비∙활동 위한 헤어∙메이크업∙코디, 댄서비, 인건비, 자체 콘텐츠 제작비, 마케팅 비용. 얼마나 쓰느냐는 회사 상황에 맞게 (정합니다). 거대 기획사는 자본력이 좋아서 중소기획사보다 더 많이 들어갑니다. 우린 중소기획사치곤 좀 많이 (투자금이) 들어간 거죠. (해외시장에 어필할 만한) 퀄리티를 뽑아야 하니까요.”
아시다시피 K팝 아이돌은 소속사가 키워내는 겁니다.
데뷔 전에 소속사 마련한 숙소에서 몇년씩 합숙하면서 각종 레슨으로 실력을 쌓고 데뷔를 준비하죠.
피프티 피프티 경우에도 멤버들이 보컬∙댄스∙연기∙외국어∙운동 레슨까지 받았다는데요.
그만큼 데뷔까지 준비 기간도 길고 초기 투자비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그룹 활동 초기엔 당연히 투자금이 수익보다 훨씬 더 큰 마이너스 구조일 수밖에 없는데요. 그룹마다 다르지만 보통 ‘평균적으로 3년차는 돼야 정산 받는다(투자금 회수하고 이익이 나기 시작한다)’고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어트랙트는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노리고 기획과 마케팅에 공들였습니다. 먼저 국내 활동으로 인지도와 팬덤을 쌓은 뒤 글로벌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기존 K팝 그룹과 달리, 해외 이용자가 많은 SNS인 틱톡으로 직행했죠. 틱톡 마케팅 비용도 상당히 들었을 걸로 추정됩니다. 이 전략은 들어맞았고, 초고속 성공의 발판이 됐습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소속사(어트랙트)가 처음부터 SNS를 주 타깃으로 해서 큐피드 영어 버전은 (한국어 버전과) 구성도 다르게 만들며 신경 썼다”면서 “콘텐츠(노래)의 힘도 있지만 소속사의 기획이 중요하게 작용한 성공 사례”라고 설명합니다.
K팝의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 낸 겁니다.
200억원에 아이돌 사간다? 바이아웃 논란
엔터업계 관계자들이 이번 사태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건 워너뮤직코리아가 ‘200억원 바이아웃’을 제안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이아웃(buy-out)이란 용어가 K팝 그룹을 대상으로 등장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인데요.
바이아웃은 보통 프로축구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이죠.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선수와 소속 구단 사이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을 가리키는데요.
어트랙트가 공개한 녹취록에서 전홍준 대표가 바이아웃이 뭐냐고 묻자,
워너뮤직코리아 관계자는 “보통 표현으로 아이들을 다 인수하고, 이런 식으로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워너뮤직코리아의 바이아웃 제안을 어트랙트 측이 언제 알았느냐, 이게 멤버 강탈 시도냐 아니냐를 두고서는 양측(전홍준 대표와 안성일 프로듀서) 입장이 첨예하게 맞섭니다. 어느 쪽 말이 진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소속사와 전속계약 기간이 한참 남은 아이돌 그룹을 다른 엔터사가 거액을 주고 사가는 일 자체가 한국에선 상당히 낯선 일입니다.
K팝이 글로벌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작습니다. 네트워크로 서로 다 연결돼있죠. A회사가 연습생 때부터 키워서 데뷔시킨 그룹을 B회사가 돈을 후하게 쳐주고 사간다? 시장논리로는 가능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좁은 엔터 바닥에선 ‘상도의에 어긋난다’며 손가락질받을 일로 치부됩니다. 자칫하면 그룹 멤버들에 대해서도 ‘소속사가 고생해서 키웠더니 배신한다’는 식의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고요. 한마디로 한국 엔터업계 정서와는 맞지 않습니다.
달리 보면 워너뮤직코리아의 바이아웃 제안은 달라진 K팝의 위상 또는 시장가치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한데요. 마치 프로축구 시장처럼 한층 더 자본주의화하고 있는 겁니다.
이에 대해 이남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향후에 K팝 시장이 엄청나게 커져서 시장가치가 훨씬 높아진다면 그땐 프로스포츠선수들처럼 ‘바이아웃’ 사례가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예컨대 큰 회사가 ‘1000억을 줄 테니 그룹을 팔아라. 더 큰 글로벌 아티스트로 키우겠다’라고 하면, 그게 아이돌을 육성한 분들이 엑시트(투자금 회수)할 방법이 될 수도 있죠. 그 돈으로 새로운 그룹을 또 만들고요. 하지만 아직까진 그렇게 하기엔 엔터업계가 너무 좁습니다. (업계가 생각하는) 상도덕상 맞지가 않아요. 아직은 시기상조이죠.”
소속사는 갑, 연예인은 을?
아이돌 멤버가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경우는 꽤 많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피프티 피프티만이 아니라 EXO의 첸백시(이후 소속사 SM과 계약 유지키로 합의),
BAE173 남도현(가처분신청 인용), 이달의소녀 멤버들(12명 전원 가처분신청 인용) 사례가 있는데요.
참고로 가처분이란 방식은 2009년 동방신기 멤버들이 SM엔터테인먼트와의 분쟁(전속계약 기간이 13년이나 됐던 게 쟁점)에서 처음 썼습니다. 정식 재판은 대법원까지 가려면 2~3년 걸리는데, 그동안 활동을 못하면 가수 생명이 끝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동방신기가 가처분신청을 냈는데 당시 법원이 이를 인용하면서 엔터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요. 이를 계기로 2009년 전속계약기간을 최대 7년으로 제한하는 연예인 표준전속계약서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전속계약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이 줄잇고 있죠.
사안마다 다르지만 과거 사례를 볼 때 이런 가처분신청은 인용되는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즉, 법원이 연예인쪽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죠. 과연 이번 피프피 피프티 건은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관심이 집중되는데요.
하재근 평론가는
“만약 수십억 들여서 기껏 (그룹을) 키워놨는데, 뜨자마자 바로 계약을 깨고 나가버린다면 앞으로 중소기획사에서 어떻게 신인을 키울 수 있겠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이 사건이 중소기획사를 운영하는 분들에겐 초미의 관심사”라고 설명합니다.
중소기획사는 아무래도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합니다.
한 중소기획사 관계자는
“아티스트가 스케줄이나 건강관리 소홀을 문제 삼아 계약해지를 요구하면 우리처럼 법적 분쟁에 투입할 여력이 없는 작은 회사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합니다.
“상황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여전히 기획사가 ‘갑’, 아티스트가 ‘을’이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보니 논란이 불거지면 진실과 상관 없이 회사만 비난을 받기 일쑤여서 아예 그냥 놓아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합니다.
과연 소속사는 갑, 아티스트는 을이기만 할까요.
엔터업계에서는 소속사와 아티스트가 예전같은 갑을 관계이기만 한 게 아니라는 점을 이번 사태가 보여준다고 이야기 하는데요. 한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요즘 소속사는 아티스트에게 음악방송이나 시상식에 출연하라고 지시하지 못한다”면서
“일일이 사전 브리핑해서 연예인 의사를 반영하지 않으면 피프티 피프티 사태처럼 ‘계약조건 위반’을 이유로 분쟁을 벌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전홍준 어트랙트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빨리 (멤버들과) 합의가 돼야 K팝의 글로벌 장르화가 되기 시작한 이 시점에 K팝 시장이 더 확대될 수 있습니다. 하루 빨리 멤버들과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By.딥다이브
이번 사태를 두고 현재까지 여론은 거의 일방적으로 소속사 편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멤버들에 대한 공격이 워낙 많아서 솔직히 조심스럽습니다. 최대한 입장을 반영하려고 멤버들의 변호인도 접촉했지만 소송 중이어서 개별적으로 입장을 밝힐 순 없다는 답변이더군요. 부디 재능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앞날에 도움이 되고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방향으로 이 사태가 해결됐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중소돌의 기적’으로 불리며 K팝의 새 역사를 써가던 피프티 피프티 멤버 4명이 소속사에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분쟁 중입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유례없는 이른 성공과 이른 분쟁을 두고 엔터업계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소속사가 피프티 피프티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80억원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고 중소기획사로서는 과감한 투자를 한 게 들어맞았던 건데요.
-이런 피프티 피프티를 인수하기 위해 워너뮤직코리아가 200억원의 ‘바이아웃’을 제시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아직은 의리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국내 엔터 업계를 술렁거리게 만드는 소식이었습니다.
-과연 멤버들이 제기한 가처분소송은 인용될까요. 엔터업계, 특히 중소기획사들엔 초미의 관심사인데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속사=갑, 연예인=을’이라는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기획사 권리 보호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는데요.
한국매니지먼트협회 이남경 사무국장은
“2009년 제정된 표준전속계약서는 뒤바뀐 소속사와 연예인의 처지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계약서의 불명확한 조항이 전속계약 파기에 악용되는데, 이를 수정해 기획사에 대한 보호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수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어렵사리 성공을 일궈내는 소속사와 아티스트.
그 관계의 끝이 소송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둘 중 어느 쪽에 더 책임이 있는지와 별개로, K팝의 글로벌 위상과는 맞지 않아 보입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서로를 동반자로 여기고 존중하는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용 인용 및 출처:
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714/12023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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