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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고 있으라] - 김남국

Reading/Religious belief

by 다시E 2021. 10. 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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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 교회의 타락은 성도의 타락을 말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부패하기 시작하는 증상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 자기중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디모데후서 3:2-4

 

마지막 때에 벌어지는 성도의 영적 타락상은 '자기중심'이다. 교회생활을 비롯해서 모든 생활이 자기중심으로 바뀐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먼저 한다.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가지 않는다. 순종하지 않는다.

-30-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절대 진리를 말한다. 마지막 시대는 이 진리를 거부하는 시대이다. 진리를 인정하는 순간 내가 그 진리에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제약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가 평화를 말하고,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제약을 받고 싶지 않으니 나도 제약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만약 제약하거나 간섭하면 강하게 반발하고 무서운 방식으로 대항하는 것이 이 말세의 모습이다.

-31-

 

문제는 성도들도 이런 생각과 마인드에 물든다는 것이다. 

-31-

 

내가 사역하는 교회에서는 예배 후 청년들이 남아서 청소를 하는데, 그것이 싫어서 교회를 옮긴 청년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예배 후에 하는 성경공부와 나눔을 싫어하는 성도들도 늘었다. 예배만 드리고 가겠다는 식으로 신앙의 기준을 자기중심으로 세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예배만 드리는 종교생활이 아니다. 마지막 때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31-

 

자기 사랑, 자랑, 교만, 비방이라는 타락상은 다 속사람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성도가 영적으로 타락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마지막일수록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고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 못하면 조급해하고 분노한다. 

-31-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넉넉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급해지고 강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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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 성도의 타락은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35-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딤후 3:6-8

-35-

 

내가 내 것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지만 성경은 그것을 영적 부패라고 말한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성경을 읽어도 우리는 자기가 스스로 판단함으로 마음이 부패해진다. 죄는 계속 가중된다. 항상 배우지만 성령의 은혜가 없음으로 마음이 부패한다. 성경은 이런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라고 말한다.

-36-

 

내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것은 나를 유혹할 수 없다. 모든 유혹과 죄는 내가 경험한 데서부터 일어난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기 전에 먼저 보게 한다. 먼저 듣게 한다. 먼저 경험하게 하고 그다음에 역사한다. 우리는 다 그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36-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성경을 나누고 은혜를 나눠야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계속해서 영적인 것을 바라보게 하는 사람, 그가 영적인 사람이다. 교회에서 만났더라도 만날수록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면 그는 세상적인 사람이다. '돌아서라'는 것은 그런 사람들과 같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내 영적인 부분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과 환경과 사람이 있다면 거기서 돌아서야 한다. 사람은 가까이하는 것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 때는 미혹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의 눈과 귀를 지키지 않으면 끌려가고 만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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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은 사람들 속에서 자라난다. 기독교는 산에 가서 도를 닦고 득도하는 종교가 아니다. 성도들과 어울리며 인내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며 배워가는 것이다.

-39-

 

마지막 때에는 진리에 대한 왜곡이 시작된다. 인류의 죄 역시 진리에 대한 왜곡에서 시작되었다(창 3:1-3). 하나님은 하와가 말한 것처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희가 죽을 까 하노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말씀이 왜곡되었고 그에 따라 마인드가 왜곡되었다. 그래서 죄가 들어온다. 이것이 우리가 죄를 지을 때의 양상이다.

-40-

 

어떤 청년은 "성경에 술 마시지 말라는 말은 없지 않나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맞다. 성경에 "술 마시지 말라"는 말은 없고 "술 취하지 말라"(엡 5:18)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성경에는 "마약하지 말라", "본드하지 말라"는 말씀도 없다. 그러면 그것은 다 해도 된다는 것인가?

-40-

 

성경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말씀이 몇번이나 나오는지 찾아보기 바란다. 우리가 '거룩'을 추구한다면 성경에 "술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 있느냐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질문해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 "술 마시지 말라"는 말이 있는지 없는지만 찾아봤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술 마시고 싶다는 마음으로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으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더 악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 말씀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왜곡'이라고 한다. 마지막 때에 자꾸 말씀을 변질시키고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말씀을 순수하게 믿고 따라가려고 하기보다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지금은 성경의 시대와는 다르다고 왜곡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다.

-41-

 

첫 번째 세상의 징조는 미혹의 시대, 영적 기근이 온다는 것이다. 미혹을 신천지 같은 이단이나 적그리스도처럼 종교적인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모든 것이 미혹이다. 세상의 철학, 사상, 유행, 문화 등이 넓게 포함된 개념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막는 미혹이 세상에 널리 퍼지는 그런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44-

 

이것은 눈과 귀의 싸움이다. 미혹은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마지막 때 세상이 지금의 문명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발달해서 우리의 눈과 귀를 빼앗는 것이 무섭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하고 영상 매체를 접한다. 눈을 다 빼앗겼다. 마지막 때에 우리의 눈과 귀를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44-

 

전 세계적으로 종교, 사상, 문학, 철학은 이미 기독교가 말하는 가치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기독교의 진리를 이야기하면 미련해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자꾸 우리를 미혹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옳은가?", "내가 믿는 것을 꼭 드러내야 할까?",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닐까?" 이것은 영적인 미혹이다.

-44-

 

말세에는 지금보다 타락의 강도가 더 세질 것이다. 죄악의 끝과 타락의 끝을 알리는 것은 '성적 타락'과 '강포함'이다. 이 두 가지는 항상 같이 간다. 노아의 때와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도 마찬가지이다. 성적 타락과 강포함은 하나님의 측량하시는 저울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상은 결국 동성애까지 갔다. 그다음은 근친상간과 동물과의 수간까지 이어지는 양상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동성애가 화두이지만, 유럽은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다. 벨기에 등에서는 동물과의 성행위가 합법이라고 한다.

-45-

 

강포함을 드러내는 힘의 문화가 갑질 문화이다. 자신이 가진 힘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갑질이다. 차별을 두는 이 세상의 문화이다. 그런데 이런 불합리함을 우리도 어느새 당연시 하고, 가진 것을 누리고, 그것을 내 것인 양 착각하게 하는 미혹을 받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말씀 앞에서 분별하지 못하면 우리는 한 방에 무너지고 다 빼앗길 수 있다. 앞으로 더욱 극렬해지는 때가 올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지켜야 한다.

-45-

 

믿는 자들에게는 재난이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 가치있게 만들어지는 축복의 시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순금같이 되는 고통'이다. 순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불 가운데 물 가운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 분명 고통스럽지만 망하는 고통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더 거룩해지고 아름답게 다듬어지는 고통이다.

-53-

 

마지막 시대에 재난의 시작은 세상에 대한 심판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53-

 

마지막을 살아가는 이들은 고통의 환경에 처하지만, 주님의 살아 계심과 보호하심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며, 산고의 고통 속에서 생명을 맛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54-

 

영적으로 깨어 있는 분별력은 눈과 귀에서 시작한다. 어떤 삶이 미혹되겠는가? 말씀이 아닌 다른 것에 눈과 귀가 향해 있을 때 우리는 미혹에 빠진다.

-65-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마지막 때 회당이나 통치자와 권력자 앞에 끌려가더라도 하나님이 할 말을 가르쳐주신다고 하셨다. 어떤 사람이 이런 준비가 되어 있겠는가?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킨 사람만이 마지막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게 된다.

-65-

 

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그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말씀에 눈을 두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영적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이다. 사탄은 계속 우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고 한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이 우리의 마인드와 기준이 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은 성경공부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기준이 말씀이며 말씀에서만 진리가 나올 수 있다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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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능력이다

내가 힘든 청년의 때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돌아보니 사실 아주 간단했다. 나는 20대 초반, 환난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성경을 미친 듯이 보았다. 온종일 5,60장 넘게 본 적도 많다. 그렇게 하루이틀이나 며칠만 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말씀을 보았다. 그러면서 성경의 능력을 경험했다.

-66-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던 시절이었다. 얼마나 많이 피웠는지 냄새만으로 담배의 종류를 알아맞힐 수 있었다. 굳은 결심을 하고 담배를 끊었다가 1년 반 만에 다시 피우고 말았다. 환난이 다가오면 우리는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가기가 쉽다.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그에 반응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보지 않았다면 다시 그 길로 가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내가 살아온 삶으로 나를 지켜가는 것이다.

-67-

 

그런데 어느 날 시편 말씀을 읽으며"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시 119:103)라고 고백하며, 어느 순간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그 길로 담배를 끊었고 말씀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럴수록 예전에 끊지 못한 것들이 끊어지기 시작했고, 예전에는 할 수 없던 것을 하기 시작했다. 내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온 말씀의 능력 때문이었다. 나는 은혜 안에서 강해졌고, 내 안에 여러가지 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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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 성경을 본다. 성경을 보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힘들면 누군가를 찾아가 상담을 하듯이 나도 하나님을 찾아간다. 그러나 너무 힘들 때는 아무리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님과 교제하기도 어렵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은혜받은 말씀, 읽기 쉬운 말씀, 청년 때 은혜받고 줄 쳤던 말씀을 계속해서 본다. 그 말씀이 다 은혜였고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분별력이 생기고 은혜가 생긴다.

-68-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영적으로 깨어 분별하는 방법은 우리의 눈과 귀의 삶을 말씀에 두는 것이다. 아침에 큐티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읽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문제가 아니라 마지막을 준비하는 삶의 자세이다.

-68-

 

하나님을 경험한 롯은 세상의 음란함을 보고 괴로워한다. 저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힘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를 믿어 구원은 받았으나 이 땅에서 세상의 악함을 보고 들음으로 고통을 당한다.

-72-

 

노아는 잔인하고 포악한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당대의 완전한 자가 되었다. 

-73-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준행한 것이 의를 전한 것이다. 하나님이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면 방주를 만들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듣고 다 준행하여 구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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