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드럽게 다루시면 우리는 별로 주의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위기를 가져오기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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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최선의 것을 주께 전부 드리는 자리까지 우리를 이끄십니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께 따지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위기를 만들어 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를 위하든지 아니면 주를 대적하든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큰 분기점'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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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서 듣게 되는 곤란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뭘 하려고 합니까?"
우리는 뭘 하려고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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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며 나아가기 전에, 미리 결과를 걱정하는 마음도 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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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나님께 다음에 무엇을 하실지 여쭤본 적이 있습니까? 주님은 결코 대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대신 주님이 누구신지 볼 수 있도록 당신의 눈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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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관한 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때까지 우리의 고정관념, 교리, 경험을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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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깨달음으로 놀라운 환희와 자유함을 맛본 후에는 그분을 깊이 알기 원하지만 정작 그때부터 깊은 흑암이 몰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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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들이 처음에는 구름과 흑암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특별한 상황에서 그 말씀들을 다시 하실 때 갑자기 말씀들이 영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이것이 환상이나 꿈이 아니라 바로 말씀에 의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언제나 살아 있는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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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는 것을 왜 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공백 기간을 허락하시면 그 공백을 스스로 채우려 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그 기간은 당신에게 성화가 무엇인지 알려주시고 성화 이후에 봉사가 무엇인지 가르치시기 위해 허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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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원만하게 드러내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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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헌신은 어떤 때와 장소에서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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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맹세와 결심은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자신을 포기할 때, 우리는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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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좋은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최선의 것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마다 사랑의 선물로 하나님께 그 축복을 다시 돌려드리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 축복들을 세어보며 감사하고, 진정한 예배로 주님께 그 축복을 돌려드리십시오. 만일 자신만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쌓아놓으면, 마치 쌓아놓은 만나가 썩었듯이 그 축복은 당신을 영적으로 메마르고 썩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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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공적 활동에 대한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주님과 얼마나 깊은 개인적인 교제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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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은 잘못된 것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을 예배할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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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급하지 않으셨으며 그럼에도 쉬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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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우정이란 생각과 마음과 영이 같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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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는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가 외부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요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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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예수님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를 남기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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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어느 곳에서도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 포기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가장 가치 있는 단 한 가지, 곧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러한 삶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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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고 거룩하게 된 당신의 모든 능력을 하나님께서 사용하게 하십시오. 이러한 제사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산 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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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두 번째 위대한 역사는 '거룩하게 된 자 가운데 임하는 기업'입니다. 거듭난 영혼은 성화의 과정을 겪으며 자신에 대한 권리를 신중히 예수 그리스도께 양도합니다. 아울러 타인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자신의 관심과 완전히 일치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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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침체는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할 때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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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충성스럽게 주님께 충성하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길을 택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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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언제나 우리에게 모든 사건을 설명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때 설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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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유일한 비결은, 우리 성품의 못나고 연약한 부분들을 하나님께서 만지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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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무지합니까? 다른 사람의 질투와 게으름과 교만을 보면서도 자신의 질투와 게으름과 교만은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은혜의 역사를 베푸시기 전에 우리 안에 자리잡은 잘못된 성품들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중 몇 명이나 용기있게 자신을 들여다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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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헛된 생각을 버리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영적 삶에서 가장 큰 저주는 기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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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전혀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계속 우리를 궁지에 몰아 결국 홀로 있게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교만이나 기만이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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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홀로 있게 하실 때, 가령 우리가 병이나 너무나 슬픈 일, 유혹이나 실망, 환난, 실연, 깨어진 관계나 새로운 관계 등으로 홀로 있게 될 때, 우리는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아무 질문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때 주님은 설명하기 시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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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두 제자들을 어떻게 훈련하셨는가를 주의해 보십시오. 사실 십자가 사건으로 난처함에 빠진 사람들은 주변의 군중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예수님께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령을 받은 후에야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잇었습니다(요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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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할 때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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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의 슬픔과 난처함은 분명히 당신에게 큰 혼돈을 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어떤 아픔을 주시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각 사람 안에는 성령에 의해 드러나야 할 무지와 아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를 홀로 다루실 때 이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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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주님과 홀로 있습니까? 아니면 쓸데없는 생각들과 주를 섬기는 데 방해되는 복잡한 친구 관계, 외모에 대한 자질구레한 생각에 집착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머릿속에서 이러한 모든 시끄러운 질문이 잠잠해지고 오직 주님과만 단둘이 있을 때까지 주님은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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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함 받은 자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들어가 그들의 성향이 바뀌고 귀가 열리며 언제나 들려오는 아주 조용하고 작은 소리인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라는 주의 음성을 들은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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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어떤 강압적인 요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있었으며 주의 부르심을 들었고 자신의 자유로운 의식 속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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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오라"(마 4:19)는 조용하지만 적극적인 주의 음성은 오직 매순간 깨어 있는 영혼에게만 들렸던 음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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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그분의 완전하신 섭리 가운데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우리만 인식할 수 있는 음성이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사건 속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과 그 음성에 관해 자문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할 때 우리에게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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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영혼은 엄청난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맞추어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놀란 영혼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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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특별한 봉사를 위한 부르심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속성에 접하게 될 때 나는 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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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은 근본적으로 그분의 속성을 표현합니다. 봉사는 내 속성에 잘 맞는 것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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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헌신된 마음이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봉사는 부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과 나의 속성이 일치된 모습이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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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이는 주님께 투정하거나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는 가운데 순수한 동기로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즉, 주님이 우리를 어디에 두시든 그곳에서 주님께 만족이 되는 삶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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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드시 이것을 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이 일을 이룰 수 없어." 이러한 강박관념이 들면 이는 침체의 첫 번째 표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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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당신의 영혼은 새롭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나누어진 가운데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의기소침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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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을 망각한 영혼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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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당신이 어디로 가든 걱정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받아야 할 존경과 영광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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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나와의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기억하고 계십니다. 만일 지금 주님께서 과거와 다르게 나를 대하시는 것을 발견한다면 창피와 모욕을 느낄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부끄러움은 회개로 인도하는 거룩한 슬픔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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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압박하는 일들이 많더라도 그 모든 염려를 곁으로 밀어두고 주님만 바라보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나를 앙망하라."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당신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구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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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계속 보아왔다면, 그는 거울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를 보면 자신의 깊은 영혼 속에서 그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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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 때문에 주님 안에 거하는 관계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가끔 소란한 일들이 발생해도 그 소란이 마음을 동요케 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어려운 훈련은 우리 마음의 거울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계속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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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의 삶은 내가 진리라고 고백하고 가르치는 그 내용을 거짓말로 만들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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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깜짝 놀랄 만한 방법이 아니라 오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음성이 정말로 하나님의 음성인가"하고 의아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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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인생 속에서 한 가지 열정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마음의 고통과 환멸과 환난을 환영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것들마저 그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의 복음을 향해 요동함이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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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고전4:13)
우리에게 너무 많은 세상의 애착들이 남아 있어서 우리는 만물의 찌꺼기가 되기를 스스로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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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벧전 4:12)고 말합니다. 우리가 겪는 여러 고난을 이상하게 여긴다면, 이는 우리 마음이 겁으로 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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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동이에 떨어지는 한방울의 물처럼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 소망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별볼일 없는 사람, 당신의 섬김마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섬김을 받지 않고 오직 섬기기 위해 당신의 삶을 바치며 그 삶이 다 닳아지기를 원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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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은 영적으로 병든 증거입니다. 낙심의 책임은 언제나 내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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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는 책임을 다할 때 우리는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평범한 것들 속에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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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거룩을 위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치러야 할 대가란 이 땅에서의 관심을 지극히 줄이고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무한히 넓히는 것입니다. 즉, 거룩이란 하나님의 관점을 향한 집중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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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 예수님을 다스렸던 성향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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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위해 찢겨진 빵이 되고 부어지는 포도주가 된다는 뜻은, 그들이 영적으로 자라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이 그들에게 영적 영양분을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때 그들은 당신을 밑바닥까지 고갈시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 스스로 충분한 공급을 받고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에 완전히 고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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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될 때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향해 비참과 비통을 느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진정한 기쁨은 너무나 오랫동안 그분을 듣지 않았던 부끄러움과 섞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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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작정 승리하는 삶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극복할 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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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주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가 일어나면 하나님의 영감이 임합니다. 주님께서 손 마른 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막 3:5). 이때 그 사람이 손을 내밀자 그의 손은 온전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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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오시면 비전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일들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울증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장 평범한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는 가장 간단하고 평범한 일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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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나님께서 계시는가' 하고 의아해하던 그러한 평범한 일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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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절망이 예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사실 절망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엄청난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쉽게 절망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자느냐. 그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렸구나. 네가 다시 바꿀 수 없는 것이로구나. 그러나 일어나라. 함께 다음 단계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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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하여금 잠이 들게 하십시오. 그러나 그 과거가 예수님의 품 안에서 잠들게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다가오는 미래로 들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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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실패의식이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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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내 곁에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첫 발걸음을 떼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돕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경우 하나님께서도 돕지 않으십니다. 물론 일어나는 즉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계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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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일은 어떤 사람의 인격의 고상함을 가장 활실히 드러내는 시금석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상과 가장 거리가 먼 일로써 그 사람에게는 가장 천하고 사소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바로 우리가 참으로 영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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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일 가운데 주의 빛을 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그 일을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보잘것없고 지겨운 일을 하면 신기하게도 그 일들이 거룩해집니다. 가장 진부하고 평범한 일이었는데, 그들이 하면 뭔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보잘것없고 지겨운 일들을 하시면 그 모든 일들이 승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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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셔서 그 몸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즉, 모든 믿는 자의 몸을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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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화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고 언제나 조바심을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랑에 빠져 우리의 모든 것을 주께 내어맡기면 이러한 모든 염려들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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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용한 존재인가"라는 의식을 제거하십시오. 그러한 의식을 제거하기로 작정하면 그때 비로소 진리에 가까이 가게 될 것입니다.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하게 드려질 때 주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셔서 언제나 우리를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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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은 인내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과 그 소망을 바라며 인내하는 것이 합쳐질 때, 이를 불굴이라고 합니다.
-02 | 22-
불굴은 실패할까 두려워 매달려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의 영웅이 패배하지 않을 것을 강하게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02 | 22-
제자들의 최대의 두려움은 자신들이 망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패배하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02 | 22-
곧 주께서 보장하셨던 사랑, 공의, 용서, 자비가 결국 승리하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때 영적 불굴을 촉구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 음성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견디라는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코 패배하지 않으신다는 확신 가운데 구체적으로 일을 진행시켜 나가라는 음성입니다.
-02 | 22-
곧 바울의 봉사관은 정확하게 예수님의 그것과 같았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분에 넘치도록 내어주는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그 일을 즐겁게 할 것입니다." 섬김은 바울에게 기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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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주의 일에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거기로 보내시면 사례는 얼마나 할까? 날씨는 어떻지? 나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줄까? 나도 사람인데 주변 환경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하지."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조건을 따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02 | 25-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의심은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빗나간 질문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어디서 돈을 구할 수 있지? 어떻게 주님이 나를 돌보실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의심은, 우리의 상황이 주님마저도 해결하실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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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지만 나 자신에 대해 의심스럽다"는 경건한 속임수를 주의하십시오. 자신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정확하게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지 의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주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생각에 상처를 받습니다.
-02 | 26-
의심은 주께서 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지를 스스로 고민하게 되면서 생겨납니다. 의심은 내 속의 깊은 곳에 있는 열등의식에서 솟아오릅니다. 만일 내 속에서 이러한 의심을 발견하게 되면, 그 의심을 빛으로 끄집어내어 고백하십시오. "주님, 당신에 대해 제가 의심했습니다. 주님의 지혜를 믿지 않고 제 능력만 믿었습니다. 제 이해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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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님께 부탁할 영역을 제한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여전히 전능하고 거룩하신 분을 제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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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필요로 하는 그 일이야말로 주님께서 하실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주께서 전능한 분이심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주님의 사역을 빈곤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의 사역이 빈곤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의 불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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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에 형편없는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전능하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겉모습과 경험은 있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 철저하게 자신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이 오면 주의 사역을 빈곤하게 합니다. "그렇지. 이것 보라구. 주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시잖아." 그리고 깊은 우물에 내려가 자신의 힘으로 물을 길어보려고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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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깨닫지 못함으로써 혼돈과 슬픔과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나중에 그는 이를 깨닫고 부끄러움과 후회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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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훨씬 더 깊게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의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만사를 주님과 연결짓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상식적인 결정을 내리고 하나님께서 그 결정들을 축복하실 것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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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얼굴과 얼굴로 직접 뵐 때까지 난감한 문제 속에서 계속 외치십시오. 상식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처한 어쩔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대해 주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실 때, 주님은 상식틀에서 벗어나 초월적인 능력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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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주님께 부탁할 영역을 제한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지금 주님을 제한하려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나는 언제나 그 부분에서 실패했지.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에서 실패할 거야." 결국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 이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주께 부탁해야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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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실제적인 번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불가능한 일을 능히 해내실 것입니다.
-02 | 29-
자신의 간교함에 대해 아파한 적이 없다면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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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죄가 주는 그 어떤 아픔보다 우리를 더 아프게 합니다. 오히려 죄는 감각을 무디게 하기 때문에 점점 아픔이 줄어듭니다. 주님의 질문은 우리의 감정을 더욱 예민하게 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양심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가장 깊은 인격적 차원까지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그 말씀은 심지어 혼과 영을 찔러 쪼개기까지 하므로 거짓이란 있을 곳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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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고통이 임하는 것은 결코 실수나 우연일 수 없습니다. 아픔의 그 순간이 사실은 위대한 계시의 순간입니다.
-03 | 01-
지금 베드로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뼈아픈 질문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다 소모하거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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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를 고백하지 말고, 얼마나 많은 놀라운 계시를 받았는지도 말하지 말고, 그저 '나의 양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양 중에서는 지독하게 웃긴 양도 있고 질기도록 말 안 듣는 양도 있고 더러운 양, 이상한 양, 대항하며 들이받는 양, 그리고 다른 길로 헤매는 양들이 있는데, 이들을 다 사랑하며 자신을 다 소모하기까지 먹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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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락이란 내가 창조되고 거듭난 목적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누리셨던 희락은 아버지께서 그분을 보내신 뜻을 이루는 데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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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지루하고 힘든 상황 가운데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고후:4]
더 이상 비전이나 소망이 없는 가운데 그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능자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비전도 없고 그에 다라 열정이나 전망도 없을 때, 헌신, 연구, 독서, 집안일, 책임에 있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많이 필요합니다. 그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복음을 선포할 때보다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육신의 근본에 참여해야 합니다. 성육신의 근본이 그들의 살과 피가 활동하는 영역으로 나타나도록 해야 하고, 그들의 손길을 통해 성육신의 근본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비전이나 활기가 없고 매일 되풀이되는 지루한 일들만 있을 때 우리는 백기를 흔들어 항복을 표합니다. 삶 속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육신의 근본을 삶 속에 적용하는 사람은 끝까지 인내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꾸준하게 인내하는 것입니다. 짓눌리지 않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당신의 눈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언제나 고정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일들이라도 결코 당신을 지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조잡하고 소심한 마음과 생각에서 벗어나십시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요한복음 13장을 묵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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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지루하고 힘든 상황 가운데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고후:4]
더 이상 비전이나 소망이 없는 가운데 그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능자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비전도 없고 그에 다라 열정이나 전망도 없을 때, 헌신, 연구, 독서, 집안일, 책임에 있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많이 필요합니다. 그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복음을 선포할 때보다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육신의 근본에 참여해야 합니다. 성육신의 근본이 그들의 살과 피가 활동하는 영역으로 나타나도록 해야 하고, 그들의 손길을 통해 성육신의 근본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비전이나 활기가 없고 매일 되풀이되는 지루한 일들만 있을 때 우리는 백기를 흔들어 항복을 표합니다. 삶 속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육신의 근본을 삶 속에 적용하는 사람은 끝까지 인내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꾸준하게 인내하는 것입니다. 짓눌리지 않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당신의 눈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언제나 고정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일들이라도 결코 당신을 지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조잡하고 소심한 마음과 생각에서 벗어나십시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요한복음 13장을 묵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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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 어느 것도 성도와 하나님의 사랑 사이에 균열을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잠시 각 개인의 하나님을 향한 경건 생활에 방해가 될 수는 있어도 성도의 영혼과 하나님의 사랑 사이에 균열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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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고난, 압박은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들이 아니라 우리 안에 엄청난 기쁨을 주는 요소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그 환난을 통과하며 승리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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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환난 없이는 주님의 희락을 알 수 없습니다. 환난 때문에 주님의 희락을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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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제거하기 전에 우리는 자신의 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아주 뼈아프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야 합니다. 주께서 나를 보시는 관점으로 나 자신을 보게 될 때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내 육체의 징그러운 죄악들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항하는 무서운 교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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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님의 빛 가운데서 자신을 볼 때 부끄러움과 공포와 처절한 비참을 체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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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통로'가 되기 위해서만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중개자가 아니라 영적 메시지 자체로 변화된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이 메시지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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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말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껏 당신을 통해 말씀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메시지가 다른 영혼을 자유케 하기 전에 그 자유함이 먼저 당신 안에서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당신이 선포한 말이 당신의 삶이 되게 하십시오.
-03 | 10-
만일 비전을 잃으면 이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비전을 잃는 이유는 영적으로 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실생활에서 적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늘의 비전에 순종하는 유일한 길은 '최상의 주님께 나의 최선을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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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이루는 것을 망각하고 실질적인 일에 붙들리는 것은 우리 영혼의 부요함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03 | 11-
하나님께서 돌풍을 보내시면 가만히 계십시오. 주님보다 앞서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만일 당신이 돌풍 가운데 스스로 안전한 자리를 찾아 안주하면 당신은 아주 쓸모없는 속 빈 강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께 뭔가를 심으시면 당신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03 | 11-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면 자신의 노력마저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온전히 내어준 후에는 나의 모든 것을 드린 그분께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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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쳐질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이 주님께만 완전히 사로잡힌 바 되기 때문입니다.
-03 | 13-
주님께서 우리에게 양심의 가책을 주실 때는 혈육과 의논하지 말고 당장 자신을 정결케 하십시오.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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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삶이란 날개를 펼쳐 저 높은 곳에 단숨에 날아오르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걸음씩 계속 걸으며 나아가지만 지치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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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창세기 18:17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으면 우리의 삶은 자유함과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 찹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이 되며, 만일 하나님이 막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내리는 결정들이 보통 그분의 뜻입니다. 만일 우리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면 주께서 언제나 막으실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만일 막으시면 당장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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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전에 발생했다면 분명 내 안에 짜증과 분노가 있었을 텐데..." 당신은 내면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며 놀라게 될 것입니다.
-03 | 23-
그들의 역경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내미는 대신 그들이 열 배나 더 강해져서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심지어 지옥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영혼을 주 예수님께로부터 빼앗을 수 없도록 기도하기 바랍니다.
-03 | 24-
계속해서 섣부른 간섭으로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되지"라고 하며 그들의 도움이 되려고 하면, 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간섭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막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섭하는 가운데 우리는 신랑 예수님의 친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알량한 자비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03 | 24-
신랑의 음성이 들리기 전에, 다른 사람의 삶에 당신이 소중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버리십시오. 당혹스럽거나 힘든 상황이라도, 심지어 건강을 잃더라도 당신이 그 사람의 신랑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 신성한 희열 가운데 기뻐하십시오. 당신은 종종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삶을 파선케 하신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03 | 24-
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대부분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의식적인 순종보다 주님과의 관계 유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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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은 순진함 그 이상으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한마음을 유지할 때 나오는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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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으로 당신의 위치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 바로 당신이 영적으로 성장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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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제안이 올 때를 압니다. 주님의 제안은 매우 조용하면서도 집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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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충성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발걸음을 내딛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교리에 충성하는 것은 무엇보다 나의 지식을 신앙의 발판으로 삼는 것입니다. 믿음은 지적인 이해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마음을 다해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03 | 28-
따라서 주님을 향해 언제나 충성스러운 사역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언제나 주님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예비한다는 것은 특별한 봉사를 하는 차원이 아니라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기대 속에서 실제로 주님을 집중적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자세는 우리 인생을 어린아이 같은 기대로 가득 차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세를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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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하나님과 논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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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께서 이 일을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지 않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뵙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은 강퍅해지고 고집이 세어집니다. 자신의 간청들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져두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분이 하셔야 한다고 명령을 내립니다.
-03 | 30-
하나님을 예배해며 그분과 거룩한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실제로 중보 기도의 사역을 시작하십시오. 중보 기도의 사역은 당신의 모든 힘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함정이 없는 사역입니다. 복음을 외칠 때는 사람을 의식하거나 인기를 구하는 등의 덫이 있을 수 있어도, 중보 기도에는 함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03 | 30-
계시는 지성의 예리함보다 성령의 직접적인 조명하심에 의해 임합니다.
-03 | 31-
주님이 여러 가지를 보여주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다른 영혼의 짐을 지게 하시고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중보 기도를 하면, 주께서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지은 자들을 위하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만지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기도 가운데 들어올려서 중보 기도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03 | 31-
당신은 성령님께 교육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동료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드리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속한 상황에서부터 중보 사역을 시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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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계속 우리를 우리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로 인도하십니다. 이때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우리가 그들에게 행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는 그들을 차갑게 대하는 것입니다. 한두 마디 뼈아픈 성경 구절을 던져주거나 틀에 박힌 신앙 상담을 하고 차갑게 떠납니다. 따스함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분명 주님께 커다란 아픔일 것입니다.
-04 | 01-
이러한 일은 우리가 선택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황을 간섭하셔서 우리로 그 자리에 있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과할 때까지, 우리의 믿음은 감정과 축복에 의해 지탱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한 번이라도 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에 두시든, 우리의 내적 황폐함이 어떠하든 모든 것이 주 안에서 잘되었다고 찬송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현실 속에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04 | 04-
우리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까? 삶의 어둠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임하게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대로 뭐든 하시도록 허락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눈에 뜨이는 축복으로부터 멀어질 것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주'가 되실 때까지 우리 모두 자신의 유익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진실한 것이지만 아직 흔들림이 없는 영구한 믿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 서두르는 일이 없으십니다.
-04 | 04-
만일 우리가 기다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보다 그분이 주실 축복에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에 이끌리는 믿음은 아주 기초 상태에 있는 신앙입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용기입니다.
-04 | 04-
우리의 개인적 체험으로는 겟세마네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겟세마네와 갈보리는 아주 유일한 것 곧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 문을 상징합니다.
-04 | 05-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자'로서의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주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승리하셨다는 표시입니다. 따라서 '인자'께서 고통을 겪으심으로써 누구든지 지금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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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적인 생명의 합당한 조건에 이르기까지는 그 내용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요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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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 부활하신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되었다면, 그 증거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의 성령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계시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고집스러운 편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 계시하시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습니다. 자기가 믿는 교리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빛은 더 이상 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빛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될 때 그 완고한 상황은 당장 끝나게 될 것입니다.
-04 | 07-
아무리 연약한 성도라도 그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의 아들의 거룩한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작은 능력이라도 주장하면 예수님의 생명을 가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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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및 지옥의 그 어떤 세력도 인간의 영혼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성령은 정복될 수 없는 우리 안의 내적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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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 속에 불평이 있다면, 가차없이 발로 차버리십시오. 불평은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약해지는 적극적인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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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왕은 외적 순종에 있어서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주된 일에서는 옳게 행했지만 온전하게 다 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께는 아주 중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04 | 15-
하나님은 결코 인내를 잃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나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습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여전히 순종하지 않는 부분인 '산당'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 당신의 삶 속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의심스러운 것들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당장 없애십시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시하고 지나가서는 안 됩니다.
-04 | 15-
주된 일은 옳게 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엉성하다면, 이는 주께 집중하는 마음이 느슨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심장이 쉬지 않듯이 영적 집중에서도 쉼은 필요 없습니다. 도덕적인 삶에서 벗어난 날을 보내면서 도덕적인 사람으로 유지될 수 없고, 영적인 삶에서 벗어난 날을 보내면서 영적인 사람으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온전하게 주의 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04 | 15-
마음을 다해 당신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린 적이 있습니까? 이는 감정이 아닌 의지의 문제입니다. 감정은 단지 이러한 의지적 활동의 포장지일 뿐입니다. 만일 감정을 앞세우면 당신은 결코 의지적 해결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결단을 하고 나면 어떻게 될지 하나님께 묻지 말고, 얕든 깊든 깨달은 것에 대해 실천하기로 결단하십시오.
만일 풍파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면 당신의 주관적인 확신이나 논리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오직 주님과의 관계만을 유지하십시오.
-04 | 17-
우리는 영적 역량을 교육 또는 지능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영적 역량은 하나님의 약속(성령)에 의해 평가되어야 합니다.
-04 | 20-
결코 자연적인 능력의 한계를 끌여들여 핑계치 마십시오.
-04 | 20-
당신은 주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감히 걱정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한 적은 없습니까?
-04 | 20-
주님께서는 계속적으로 너무 복잡한 우리로 인해 놀라십니다. 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쓸모없는 의견들입니다. 단순할 때 우리는 어리석지 않게 되고 항상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04 | 21-
하나님의 신비는 미래에 발생할 일들 가운데 있지 않고 '지금' 있습니다.
-04 | 21-
우리는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만일 하나님께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하게 해달라거나 하나님에 대한 의식적인 경험이 우리 인생 속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질문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질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04 | 2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 14:1). 내 마음이 근심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예수님을 아프게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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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름을 받은 이유는 우리의 의심을 나열하기 위함도 아니요, 하나님과 자신만 아는 개인적인 신앙 체험의 황홀함을 드러내기 위함도 아닙니다. 사역자의 삶의 비결은 언제나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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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의 유일한 관심은 오직 하나님만을 향해 집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예배하는 자녀는 삶의 다른 부분들, 곧 정신적, 도덕적, 영적 활동으로 인해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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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추구하지 마십시오. "그런즉 우리는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동적인 사역으로 인해 기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한 가지로만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상업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는가를 계산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제 모든 것이 잘되어간다고 흥겨워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의 은혜가 기초를 놓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기보다 그를 제자화해야 합니다. 구원과 죄씻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사역입니다. 주의 제자로서 우리의 사역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때까지 그들의 삶을 제자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려진 한 사람의 영혼이 주의 영으로 단순히 각정된 수백의 영혼보다 더 가치 있습니다.
-04 | 24-
사역자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생명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는 주의 영이 함께하는 제자가 되는 대신 잔소리 많은 독재자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독재자들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공동체에서도 명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런 식으로 명령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주께서는 제자됨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언제나 "만약"이라는 말로 시작하셨지, "반드시...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강요가 아닌 선택입니다.
-04 | 24-
당신이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되면, 삶 속에서 위대한 것들이라고 불렀던 것들에 더 이상의 관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과 연합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04 | 28-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철저한 포기의 시험은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말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추측을 주의하십시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허락하는 것은 당신이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실제로 신뢰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으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하실 것인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내려놓음이란 주님께 질문하려는 사치마저 거절하는 것입니다.
-04 | 28-
당신이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한다면 주께서 당장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사람이 삶에 싫증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의 삶을 노략물로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려놓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당신은 이 땅에서 가장 놀랍고 기쁜 피조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완전히 사로잡아 당신에게 무한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아직 그 자리까지 가지 못했다면, 이는 불순종 때문이거나 당신이 단순해지기를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04 | 28-
우리는 수학적으로 계산하면서 살아왔기에 불확실한 것을 나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져야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인 삶의 속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인 삶의 속성은 불확실성 속에서 확신을 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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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면에서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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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한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현실은 보통 슬픔의 한숨으로 표현되지만 실은 벅찬 기대로서 맞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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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음 단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주께 자신을 내려놓고 주께서 맡기신 가장 가까운 의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그분은 언제나 깜짝 놀랄 일들로 우리의 삶을 채우십니다.
-04 | 29-
우리가 자신의 특별한 관념을 주장하고 옹호하려고 할 때 우리 안의 믿음은 죽어갑니다.
-04 | 29-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불확실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다음에 무엇을 하실지에 대해 불확실할 뿐입니다.
-04 | 29-
예수님은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지 "나에 대한 너의 신념을 믿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이 어떻게 오실지 알 수 없는 것이 영광스러운 불확실성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주님께 충성을 다하십시오.
-04 | 29-
만일 희귀한 영감의 순간들을 끊임없이 원한다면, 이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던 특별한 순간들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순간들을 끊임없이 재현하시기를 고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영감이나 갑작스러운 하나님의 손길이 없이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 놀라운 깨달음이 임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곳에 계셨는데 나는 왜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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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순간들은 갑작스러운 영감의 순간들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순간들에 의해 곁길로 빠질까 염려하십니다. 어떤 특별한 영감의 순간들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지 마십시오. 우리의 표준은 평상시에 마땅히 해야 할 의무들입니다.
-05 | 01-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_ 합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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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는 무관심이 아닙니다. 인내는 모든 공격을 견뎌내는 어마어마한 강한 바위를 연상시킵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이 인내의 근원입니다. 주를 볼 때 도덕적 영감(자발저그올 순종하려는 마음)을 얻습니다. 모세는 의무감이나 어떤 이상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인내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같이 하여"(히 11:27) 참았습니다.
-05 | 02-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어떤 명분이나 특별한 관심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주님을 바라보는 때가 언제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를 볼 때마다 영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큰 의미와 도전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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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현실 속에서 예수님께 광야의 시험을 주신 것처럼, 만일 우리에게도 영적 시험을 주시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면 인내하십시오. 당신은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인내의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05 | 02-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우리가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나아가게 됩니다. 영적으로 안일함에 빠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를 위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내가 더욱 구원의 잔을 마시리라"(시 116:12-13)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서 만족을 찾기를 원합니다. "이제 다 되었어. 충분해. 나는 온전하게 거룩해졌어. 나는 잘 인내할 수 있어." 그러나 영적 자만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멸망의 길에 서게 됩니다. 우리의 비전은 우리의 한계를 초월해야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빌 3:12). 체험한 것만 붙들고 있으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영감을 얻으십시오.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 이상의 것을 얻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느슨해지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05 | 02-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다 보면, 그들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위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사람을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서서히 이끌고 계시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를 불쌍히 여겨 간섭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일치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는 사라지고 대신 그들을 향한 동정심과 배려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질책하는 행위가 됩니다.
-05 | 03-
우리가 하나님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으면 능력 있는 중보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가장 많이 파괴하는 것은 개인적 동정심과 편견입니다. 하나님과의 일치가 중보 기도의 열쇠입니다. 주님과 일치되기를 거절하는 이유는 죄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동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도 죄보다는 동정심일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동정심은 우리로 하여금 "나는 그 일이 발생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 즉시 우리는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를 상실하게 됩니다.
-05 | 03-
생동하는 중보 기도는 자기연민과 거리가 멉니다. 중보 기도자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중보 기도에는 자신을 고려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보 기도를 통해 당신은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철저하고 완전하게 일치됩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분별력을 주신 이유는 중보 기도를 위한 것이지, 남의 결점을 찾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05 | 03-
다른 사람을 향한 개인적인 동정심을 가지고 주의 보좌로 나아와 그들을 위해 우리가 청하는 것을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중보 기도라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 것입니다.
-05 | 04-
중보 기도의 최대 장애물인 영적 완고함은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좋은 점에 동감하게 되면서 속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안에 속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선하고 덕스러운 것들이 있다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05 | 04-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우리의 관심이 일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합니다. 이러한 중보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는 자신의 인간적 연민을 영광스럽게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05 | 04-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죄와 일치시키셨다는 사실로부터 우리의 모든 동정심과 관심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리적 중보기도란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인간적인 연민을 버리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으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05 | 04-
내 마음은 인간적 연민을 고집합니까, 아니면 주님의 관심으로 대치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님을 못마땅해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온전한 관계 가운데 있습니까?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충만합니까? 내 방식을 고집합니까, 아니면 주님과 일치하기로 결심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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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언제나 심판의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사실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 탓이 아닙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보여주실 것입니다.
-05 | 05-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되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지 못하신다면, 주님은 거짓말쟁이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계명이라서 순종할 수 없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뭔가를 고려하지 못하셨다고 하나님을 탓하는 것과 같습니다.
-05 | 05-
나 자신을 의지하려는 모든 요소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죽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완전한 연약함을 인식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성령께서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05 | 05-
다른 사람들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다루셨는가를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인내와 온유로 당신을 대하셨습니다.
-05 | 06-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를 조금이라도 희석시키지 마십시오. 진리는 진리로 서게 하고 진리를 위해 변론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셨지 "사람들로 네 사상과 의견에 따르도록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05 | 06-
인내란 지구력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은 명궁수의 손에 있는 활과 화살처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볼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조준하고 활을 당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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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손에 당신을 맡기십시오. 지금 인내해야 하는 상황입니까? 믿음의 인내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그분이 나를 죽이신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주를 기다릴 것입니다"(욥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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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연약한 동정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은,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이라는 사실 위에 힘차고 담대하게 서 있는 확신입니다. 비록 당신이 지금 그분을 볼 수 없고 그분이 무엇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도 당신은 주님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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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파선은,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이라는 영원한 진리를 지적으로 붙들지 못할 때 찾아옵니다. 믿음은 당신의 삶의 최상의 노력으로서 하나님만 철저하게 신뢰하는 가운데 당신 자신을 과감히 던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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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일들을 당해도 조금도 요동함이 없이 견딜 수 있는 생명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관점을 취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위대한 로맨스가 될 것이며 언제나 놀라운 일을 볼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권능의 중심부로 우리를 이끌기 위해 우리 각자를 훈련시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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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비전)가 없으면", 즉 우리가 일단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게 되면, 우리는 무절제해지고 제멋대로 행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를 던져버리고, 작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뵙는 것도 거부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스스로 주도권을 쥐고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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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살아간다면, 이는 영적으로 내리막길을 가는 것이며 비전을 잃은 것입니다.
-05 | 09-
당신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면서 그 길을 의심하는 습성을 경계하십시오. 주저하지 말고 첫 발걸음을 떼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마음을 강하게 먹고 말씀대로 당장 믿음으로 행동하십시오. 당신의 결단을 절대로 재고하지 마십시오.
-05 | 10-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실 때 머뭇거리면 은혜로 서 있는 당신의 발판이 위험해집니다. 주도적으로 나아가십시오. 의지적으로 발걸음을 당장 떼십시오. 뒤로 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십시오. 지나온 다리를 태워버리십시오. 주께서 말씀하신 일을 불가피한 일로 만드십시오.
-05 | 10-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_벧후 1:7
-05 | 11-
사랑은 다른 사람보다 어떤 한 사람을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영적으로 그러한 사랑을 원하십니다(눅 14:26).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속에 부어지면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쉽습니다. 그다음에는 베드로가 언급한 것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05 | 11-
경건 습관의 본래 목적인 하나님과의 교제 대신에 서서히 습관 자체를 예배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습관이 우상이 됩니다.
-05 | 12-
"하나님, 지금은 기도하고 있으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어요. 이 시간은 하나님을 위해 정한 시간이랍니다." 아닙니다! 이러한 경우 경건의 시간은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니라 당신의 습관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05 | 12-
주님은 천둥 같은 음성으로 오지 않으십니다. 주의 음성은 너무나 세미해서 쉽게 무시하게 됩니다. 우리의 양심을 예민하게 하는 것은 내면 세계를 언제나 하나님께 열어두는 끊임없는 습관입니다.
-05 | 13-
양심이 말할 때는 절대로 시비를 따져서는 안 됩니다. 헛된 모험을 걸고 하나라도 허락하면 양심을 어긴 일로 인해 하나님과의 내적 교통이 불투명하게 됩니다. 양심에 꺼려지는 것은 무엇이든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내면 세계의 시력이 맑게 유지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05 | 13-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 안에 이루신 것을 삶에서 표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단지 지옥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우리의 죽을 육체를 통해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생명을 드러내는지의 여부는 역경을 당해 보면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그 원천적인 향기를 드러냅니까? 아니면 그분을 떠나 나 자신의 짜증과 신경질과 초조함을 드러냅니까? 역경 가운데 참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드러나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것입니다.
-05 | 14-
자기연민에 빠지면 자신을 추스릴 수 없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얼마나 완벽하고 순결하신지를 드러내는 수단일 뿐입니다.
-05 | 14-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드러나실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05 | 14-
역경을 택하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역경을 당하는 것은 다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역경을 허락하셨다면 그분은 당신 곁에서 충분히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05 | 14-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드러나도록 자신의 영혼을 추스리십시오. 절대로 기억이나 경험으로 대처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십시오.
-05 | 14-
무엇을 위해 구원받았는지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의 죽을 육체를 통해 나타나게 하시 위해 구원받은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선택 받은 목적을 실현하십시오. 매번 기회를 잡으십시오.
-05 | 15-
당신이 구원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받은 구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이루신 일을 드러내야 합니다. 당신의 입과 머리와 뇌신경으로 당신의 구원을 삶 속에서 표현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여전히 옛 방식대로 행하는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셨고 정결하게 하셨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05 | 15-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벧전 4:12). 불 시험이 오면 일어나 대처하십시오. 만일 그 불 시험이 당신의 죽을 육체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낼 기회가 된다면 아무리 아픈 고통이라도 인내하십시오.
-05 | 15-
우리는 하나님께 명령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 위해 여기 있으며, 주께서 주님이 원하시는 바를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으면 그분은 우리를 '찢겨진 빵과 부어지는 포도주'가 되게 하셔서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양육하게 하실 것입니다.
-05 | 15-
우리는 약속을 통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습관을 통해 신성한 성품을 우리 인간의 성품 안에 '만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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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길러야 할 습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다 준비해 두셨음을 깨닫는 습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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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적으로도 돈 걱정만 하는 것은 못된 습성입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하나님의 공급을 믿지 않는 것은 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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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한푼이라도 안 주시려고 더 깎는 인색한 분으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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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면 주님은 바다의 모든 마지막 모래알과 가장 먼 별까지 사용하셔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05 | 16-
상황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무슨 문제가 됩니까? 왜 난관이 없어야만 합니까? 자기연민이라는 비참한 영적 사치에 빠진다면 우리는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풍요함을 포기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받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05 | 16-
자기연민보다 더 심각한 죄는 없습니다. 자기연민은 하나님 대신 자기 유익을 마음 보좌에 둡니다. 또한 우리의 입을 열어 불평을 쏟게 하고 우리 삶을 끝없는 영적 갈증에 빠지게 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사랑스러운 모습도, 덕스러운 모습도 없습니다.
-05 | 16-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순간부터, 주님께서는 우리가 참된 만족의 샘들이 주님 안에만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도록 이 세상에 속한 모든 헛된 부요를 궁핍하게 하십니다.
-05 | 16-
만일 하나님의 위엄과 은혜와 능력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며"(고후 9:8).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차고 넘치게 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십시오. 그 비결은 하나님의 성품이 당신의 성품을 통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의 축복이 언제나 당신을 통해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05 | 16-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오직 한 길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한 길은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05 | 18-
상식과 이성으로는 생명의 샘에 닿을 수 없습니다. 영적 성장은 신경을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 마음을 집중함으로 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아십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 집중하고 있으면 우리는 들의 백합처럼 영적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05 | 18-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우리를 붙들고 많은 말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늘의 별들처럼, 들의 백합처럼 단순하고 꾸밈없이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삶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05 | 18-
사람이 거듭나면 과거와는 달리 한동안 생각과 논리에 확고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형성하기 위해 새 생명을 표현해야 합니다. "인내함으로 네 영혼을 얻으라."
-05 | 20-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분입니다. 기분이란 기도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발로 차버려야 떠납니다. 기분은 언제나 물리적인 조건과 관계가 있지, 도덕적(영적, 내면적)인 것이 아닙니다. 물리적인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기분에 말려들지 않도록 계속적인 노력을 하십시오. 결코 한순간이라도 기분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기분을 떨쳐버리면 안될 것 같았는데 됩니다.
-05 | 20-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영적인 결단과 담력이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05 | 20-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 주님의 관점에서, 사람들이 삶의 수단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들의 삶에서 가장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05 | 21-
하나님과의 관계 외에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해 염려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염려가 너희들의 삶을 주관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집중하라."
-05 | 21-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대해 부주의함으로 인해 고생합니다. 그들은 마치 돌봐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의 일들에 대해 부주의합니다. 이러한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부주의를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삶의 최대 관심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첫째로 두고 다른 모든 것은 그다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이 말씀이 우리의 삶에 실현될 수 있도록 성령께 우리 자신을 의탁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힘든 훈련 중 하나입니다.
-05 | 21-
우리 중에는 이러한 하나됨에서 멀리 떠나 있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될 때까지 절대 우리를 홀로 두고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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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는 옳지 않을 뿐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염려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실제적인 부분을 돌보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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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불신 외에는 우리를 염려하도록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신 말씀을 질식시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주님의 경고에 주목한 적이 있습니까? 마귀입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의 염려입니다. 사소한 염려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심겨진 말씀을 질식시키는 것입니다.
-05 | 23-
"나는 내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어!" 이것이 바로 불신앙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이러한 불신앙에 대한 유일한 치료는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05 | 23-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위대하신 말씀은 "다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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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내가 나 자신을 향해 절망할 때까지는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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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내 권리'에 의해 인도받을 때마다 그 삶은 영적으로 둔화됩니다. 믿음의 삶의 가장 큰 원수는 죄가 아니라 충만하지 못한 어설픈 '선'입니다. 이 '선'은 언제나 '최상의 선'의 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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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가끔이 아니라 매번 최선의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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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그 응답이 당장 나타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기대합니까?
-05 | 26-
성령 세례는 당신으로 하여금 미래 또는 영원을 생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현재'를 위한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분을 지금 알기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영원토록 멈추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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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주를 믿는 자들에게 자연인이 스포츠 세계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과감한 정신을 가지라고 요구하십니다. 사람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면 모든 것을 걸고 과감하게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상태에서도 그동안 상식을 초월해 주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과감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당신은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이 상식만큼이나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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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주저하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위기 상황에서 이방인들처럼 행동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가끔 한두 사람만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과감하게 나아갑니다.
-05 | 30-
만일 사람을 최고로 신뢰하면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악감정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을 사람에게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당신과 타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신뢰하지 마십시오.
-05 | 31-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뭔가를 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우리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바쁜 행사를 보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역자가 너무나 적고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역자가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보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당신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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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망각하는 만큼 우리는 사람 들에게 실망합니다.
-06 | 01-
정말로 너무나 크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해서 나 자신이 변했다면 어떻게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실망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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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백성들아 내가 너희의 무덤을 열 것이라"(겔 37:13).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속성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실 때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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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당신의 모습이 어떠했을지를 성령이 보여주신다면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역사하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당신은 그 어떤 범죄자라 할지라도 당신이 타락할 수 있는 타락의 절반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무덤'이 하나님에 의해 열리면 우리는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을 때 사람의 속성이 얼마나 악한지를 끊임없이 계시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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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 유진 피터슨 (0) | 2021.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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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 연습] - 로렌스 형제 (0) | 2021.03.16 |
[예수님처럼] -맥스 루케이도 (0) | 2021.03.08 |
[팀 켈러의 기도] -팀 켈러 (0) | 2021.02.28 |
[숨쉬지 못해도 괜찮아] -김온유 (0) | 2021.0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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