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나님은 그 혹독한 상황 속에서 결국에는 나를 구해내셨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오늘은 분명 어제보다 조금 덜 아프고, 덜 외로워서 행복한 기분이 드는 날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이 기쁨은 결코 어쩌다 얻은 우연이 아니라 분명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내 것이었다. 그러니 아직 다 낫지 않았으면 어떻고, 아무런 치료 계획이 없다고 해도,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인가? 그런 게 오늘 내게 주어진 행복을 기뻐하지 못할 이유가 된다는 걸까?
-93-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싶었지만 막상 현실을 마주하면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분간되지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몸이 지치기 시작하면 의심과 불안이 찾아들어 믿음까지 흔들렸다.
'내 믿음은 왜 이리도 나약한 걸까? 한 번이라도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99-
하나님은 내가 실수를 하거나 조금 농땡이를 부린다고 곧바로 혼쭐을 내시는 엄마나 선생님 같은 분이 아니셨다. 그분은 이미 나의 깊은 속마음을 다 아시고 내가 더 잘할 수 없는 이유까지 먼저 이해하고 계신 분이셨다.
그렇게 나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께 가장 따뜻하고 온전한 이해를 받았다. 그러니 이제는 단지 솔직하게 기도를 드리기만 해도 충분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내 편이시기 때문이다.
-114-
그리고 나는 이렇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엇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단지 살아 있는 것 이상의 성취가 있는 삶을 원했다. 하지만 머릿속 작은 틈 사이로 '겨우 살아 있기에도 버거운 마당에 그런 인간다운 바람은 사치야'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나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 이렇게는 못 살겠어요. 그만 저를 데려가주세요."
-145-
영문도 모르고, 미처 예견하지도 못하고, 무슨 이유인지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온유의 사고는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는 그저 참혹하고 억울했고 모질고도 고통스럽게만 느껴졌었다.
-155 (엄마의 고백)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마25:34-40, 표준새번역)
그랬기에 나는 무의미한 기도를 내려놓고 그냥 주님의 높은 뜻을 따르겠다고 햇다. 그렇게 순종이라는 가면을 쓴 불신이 시작 되었다. 더는 나를 지치게 하는 현실을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 더는 기도하다가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더는 주님을 믿을 수 없어서 지레 먼저 기도하기를 포기햇던 것이다. 정작 하나님은 내게 단 한 번도 "네 소원을 내려놓고 내 뜻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주님, 기도하지 못했던 것은 결국 저의 불신 때문이었어요"라는 고백을 드리자 성령이 내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다. 그리고 즉시로 나의 기도가 바뀌었다.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요 16:23-24)
"하나님, 저의 소원은 하루빨리 이 병원을 떠나는 거예요. 저를 계속 살게 하실 거라면 이제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살아 있기 위해선 누구나 호흡을 해야 하는데 스스로 호흡하고 싶다는 것이, 그게 욕심은 아니잖아요!"
-228-
물론 때때로 나의 소원과 주님의 뜻이 다를 수 있고, 그래서 주님은 아무리 간절하게 소원을 아뢰어도 단념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시간에, 주님이 하실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주님이 내 기도를 바꾸어놓으신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나의 소관을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주님을 믿고 소원을 아뢰고 기쁨을 얻기로 했다.
-229-
이보다 더한, 지독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살리고자 하셨기에 그 많은 고비를 죄다 뒤엎고 나를 살려내셨다. 그러니 암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무얼까? 이번 일을 통해 하나님이 과연 내게 무엇을 주실는지 어떻게 벌써부터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인가?
-250-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고후 1:8-10)
-250-
그러니 나에게는 아픔 뒤에 오는 회복과 두려움 뒤에 오는 소망, 기다림 끝에 오는 성장이 유달리 더 감격스럽다. 매 순간 결코 당연하지 않은 호흡을 이어주는 이들의 사랑이 고맙고, 이렇게 살아서 은혜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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