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작가인 토머스 머튼은 이렇게 적었다. "신비적인 하나님 인식은 개념과 사상들보다 윗길이다. 어떤 관념도 배제된 상태에서 심령에 수동적으로 새겨지는 지식이다." 신비주의자였던 머튼은 하나님에 대해 기록한 말씀이나 관련된 사상이 아니라 정확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싶어 했다. 이성은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한계이며 장벽으로 여겼다.
반면에 바울은 크리스천들에게 기도하면서도 이성을 지키라고 당부한다.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전 14:15).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크리스천은 말씀으로 오신 아들을 통해 아버지께 말로 기도한다(요 1:1). 마르틴 루터는 누구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가선' 안 되며 그랬다간 기도를 하면서도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는지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고 못 박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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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성령님이 마음에 역사하신다. 미리 뜻하신 이들의 마음에 이미 뜻하신 방식으로 역사하시지만 말씀 없이는 결코 일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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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는 이들을 비판하면서 언어를 사용하는 특성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요소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에 필수적인 성분이며 크리스천은 성부가 성자에게 맡기셨으며(요 17:8,17) 성령님을 통해 전달되는(고전 2:13) 진리의 말씀에 힘입어 거룩해지는 법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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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성경에 나타난 크리스천들의 기도 운동은 자기성찰과 회개가 뚜렷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내향적으로 기울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갖게 된 참다운 신분을 확인하고 거기에 마음을 맞추는 상향적 성향이 짙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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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성경에 나타난 크리스천들의 기도 운동은 자아성찰과 회개가 뚜렷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내향적으로 기울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갖게 된 참다운 신분을 확인하고 거기에 마음을 맞추는 상향적 성향이 짙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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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그러므로 사고하고 말하기를 멈춰선 안 되지만 그 말과 생각은 하늘 나라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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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는 비록 이 기도문이 몇 개의 낱말로 이뤄진 문장 형태이기는 해도 같은 글월을 끝없이 재탕하면서 무념 무상의 경지에 이르려는 이들이 많으며, 그렇게 대화와 교류, 언어와 사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는 향심기도나 동양 종교가 내세우는 다양한 형태의 명상과 다를 게 없다고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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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미컬하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다 보면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의 디크르(dhikr)기도와 유사한 심리 효과를 낳기 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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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많이"(마6:7) 해서 하나님의 관심을 받으려는 술수로 변질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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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데이비스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속성과 의롭다 하심을 받고 입양된 자녀들의 견고한 지위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거기에 근거해 묵상하고 기도하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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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클라우니는 "성경은 기도의 기술이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보여 줄 뿐" 이라고 했다. 스스로 원하는 감정과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기도할지 결정해선 안 된다.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안간힘을 쓰다 보면 기도는 자연스레 그 뒤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선명하게 포착할수록 기도는 더 정확하게 틀이 잡히고 다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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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에 깊이 침잠하지 않으면 기도는 제한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 뿐만 아니라 본질에서 벗어나 엉뚱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 참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그려 낸 하나님이나 제 눈에 근사해 보이는 삶에 반응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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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핵심은 자기 표현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답하는 법을 체득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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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태어났다. 사내아이였다. 아버지는 아기가 잘 자라서 "영원한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가"가 될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를 하나님이 주신 감동으로 여긴 휫필드는 아들에게 존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
그런데 생후 4개월에 접어든 어느 날, 아기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깊은 슬픔에 잠긴 중에서도 휫필드는 속에서 불쑥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 말씀에 버금갈 만큼 중요하게 여긴 처사가 얼마나 그릇됐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교인들까지 잘못 이끌어서 똑같은 망상에 빠지게 만들었음을 통감했다. 휫필드는 자신의 느낌을 하나님이 마음에 들려주시는 음성으로 해석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을 위해 쓰라린 기도문 한 편을 짓는다. "하나님께서 이 무지한 아비어미를 더 신중하고, 더 침착하며, 사탄의 술책을 더 잘 꿰뚫어 보게 하셔서 주님의 소유인 교회를 섬기는 데 더 요긴한 일꾼이 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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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충동을 이끌어서 슬기롭게 행동하는 길을 선택하게 만드시는 경우가 전혀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성경을 읽지 않고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걸 확인할 길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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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넘치는 약속을 받은 다윗은 고백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삼하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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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작동되는 내면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성경에는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다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문자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으로 하여금 '이러한 간구를 드릴 마음을 찾게(히브리어 leb, 렙)' 해 주었다 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이 다윗 내면에서 기도하고자 하는 소망과 욕구, 힘을 불러일으켰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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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를 정리해 보자.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 반응한다. 거룩한 대화, 또는 주님과의 의사소통에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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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저 집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주님을 좇는 이들 하나하나로 그분의 집을 삼겠다고 말씀하신다. 거룩한 임재와 아름다움, 영광으로 우리를 가득 채우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기억할 때마다 크리스천의 가슴에는 그 엄청난 약속의 말씀이 사무치고 번번이 기도할 마음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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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께서 인간을 지으신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관계에서 오는 우주적인 기쁨과 사랑을 얻는 게 아니라(그건 이미 만씩하고 계시므로) 나누시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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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는 그러한 사실이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완전함과 아름다움을 통해 서로에게 행복과 기쁨을 전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본질적으로 '타자 중심'이신, 오로지 상대를 영화롭게 하고자 하시는)의 속성과 얼마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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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끽하고 계신 큰 기쁨을 나누고 싶으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누리는 지극한 기쁨에 동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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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구조를 요청하는 조명탄'을 쏘아 올리거나 절박하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도박을 벌이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성령님은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가 업적이나 공로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실존적이고 내면적인 확신을 심어 주신다. 일꾼과 감독 사이하고는 딴판으로 부모의 사랑이 움직이는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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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좇는 이들이라면 언제라도 따뜻한 보살핌과 애정이 넘치는 환대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하나님께 달려갈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성령님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셔서 자연스럽게 기도하며 매달리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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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령님은 크리스천의 내면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주님의 영광을 보고자 하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갈망을 심어 주신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신음을 당신의 탄식으로 바꾸시며 우리의 기도 속에 주님이 친히 하늘 아버지를 향한 탄원을 담으신다. 저마다의 기도에 이런 갈망, 곧 주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싶어 '탄식하는' 소망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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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기도를 드릴 때무다 하늘 아버지는 그 속에서 우리에게 정말 유익한 것과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 대한 탄원을 한꺼번에 들으시며,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는 역사를 통해 성령님의 중보에 응답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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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구체적으로 무얼 구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성령님은 감동을 주셔서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뜻을 갈구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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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하나님이 원만하게 이끌고 계시며, 나쁜 일들도 결국은 유익한 열매를 맺으며, 좋은 선물들을 결코 거둬 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멋진 미래가 찾아오리라는 점을 또렷이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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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위대한 반면, 사람은 한없이 왜소하다. 하나님은 완전하지만 우리는 흠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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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을 나누려면 서로 대등할 만큼 공통점이 많아야 한다고 보았다. 엇비슷해야 친구가 될 게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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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쓴 사도 자신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대목이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사실, 세상의 철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하나님은 인간과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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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거대한 틈 건너편에 계실 뿐만 아니라 그 간격을 잇는 다리가 되셨다. 이처럼 주님은 새로운 관계의 중보자가 되셨다. 이렇게 하나님과 맺은 관계는 깨지거나 고장 나지 않는다. 인간의 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히 9: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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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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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이 기도를 인도하시고 그리스도가 거룩한 자녀들을 위해 중보하시는 근본 동기 역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분의 임재를 즐거워하게 만드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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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사가 순조롭고 심중에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안전하다 싶으면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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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차분히 앉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경우는 드물거나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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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는 게 아니라 머리꼭대기를 맴돌 따름이라면 믿음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므로... 마음의 불신은 지성의 몽매보다 더 심각하다. 지성에 사상을 더하기보다 심령에 확신(하나님의 사랑에 대한)을 심는 게 훨씬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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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중에 정말 복음을 지닌 이들은 "벌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도 죄 짓기를 삼간다. ... 설령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걸 끔찍하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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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여 품지 않는 한, 뜨거운 열정과 기쁨에 겨워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을 마주할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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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의 기록을 통틀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던 사례는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부르짖으셨을 때 뿐이다. 주님이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를 포기한 덕분에 누구나 하나님과 부자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예수님이 잊힌 덕에 우리가 영원토록 기억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마땅히 우리가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을 대신 짊어지셨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값이다. 주님이 값을 치르셨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실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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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며 주님의 기쁨과 사랑, 평화와 확신을 공급받는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마음가짐과 행동, 성품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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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비늘이 떨어져서, 이 땅에서 제아무리 대단한 영화도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영원한 평화와 행복, 위안을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또렷이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시각이 확립되지 않으면 그릇된 방향으로 기도가 흘러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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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편... "주님,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 주시고 풍요롭게 지내도록 도와주세요. 하지만 잘 관리할 만큼만 허락하셔서 하나님을 삶의 으뜸자리에 놓는 힘을 잃지 않게 해 주세요.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안락한 생활이나 지위가 아니라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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