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사로잡은 한류 로맨스 드라마가 왜 서구에선 ‘이상한 취미’에 머물렀을까요?
레지나 킴은 인종과 정서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동양인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인종주의적 편견이 있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니다.”
그는 미국에 있는 동양인과 한국의 ‘미적 기준’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한류 드라마 속) 한국 배우들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과 매우 다르게 생겼다. 미국인 친구들은 한류 드라마의 한국 배우들이 너무 창백하고, 어려 보인다고 말했다. 그들 모두가 배우 김태희의 사진을 보고 ‘평범하다’고 말했다. 립글로스를 바른 남자 배우들도 굉장히 기이하게 여긴다.”
대사나 연기도 미국 풍토에 맞지 않았습니다.
“일부 연기가 ‘지나치게 귀엽다’ ‘과장되어 있다’는 평이 있다. 가령 애교 부리는 연기를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새롭게 탄생한’ K드라마는 어떤 요소로 ‘주류 미국인’을 설득했을까요.
혹시 BTS의 세계적 성공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마니아의 절대적 수를 늘린 걸까요.
레지나 킴은 〈오징어 게임〉의 관객이 반드시 BTS 등 한국 아이돌의 팬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K팝 팬들이 아이돌 출연 드라마에 빠지기는 했지만 이 드라마들이 주류 관객을 사로잡지는 않았다.”
그는 ‘추측’임을 전제로, “영화 〈기생충〉이 미국인 시청자들을 〈오징어 게임〉으로 이끌었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의 교집합은 무엇일까요?
쉬운 답은 스릴러 장르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K드라마가 아니라도 스릴러물은 이미 넷플릭스에 차고 넘칩니다. 2021년 나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셋 중 한 편 이상이 스릴러로 분류되거나, 스릴러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제작비를 많이 들이거나 평단 반응이 좋은 스릴러들도 대다수가 넷플릭스 시청률 10위권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지고 맙니다. 즉, K드라마의 성공 요인을 단지 스릴러 장르 덕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영국 인터넷 매체 〈리뷰긱(The Review Geek)〉은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미국 제작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생긴 빈 공간 덕분’이라고 봅니다. 10월4일 기사에서 이 매체는 “할리우드가 창조적으로 파산한 것 같다”라고 썼습니다. 〈리뷰긱〉은 우선 디즈니가 미국 콘텐츠 업계를 독점하다시피 한 현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디즈니는 속편과 리메이크, 슈퍼히어로물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렇게 해도 일정 수준의 흥행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와중에 넷플릭스가 해외로 눈을 돌렸고, “부자는 점점 부유해지고 빈자는 점점 가난해지는 우리의 현 상황”을 공략한 〈오징어 게임〉이 새 자극을 원하는 관객의 간택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K드라마 특유의 스타일을 조명하려는 시도도 보입니다.
스탠퍼드 대학 대프나 주어 교수(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는 11월9일 〈스탠퍼드 뉴스〉 인터뷰에서 “예측 가능성과 독창성의 균형”을 주된 특징으로 꼽습니다. 그가 지적하는 ‘예측 가능성’은 그간 국내에서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라고 지적해온 바와 대체로 겹칩니다. “극빈층이 부자가 되고, 부유한 남자가 가난한 여자를 만나고, 자녀가 부모의 뜻을 거역한다.” 사실 그가 “한국식 전개”로 꼽는 독창적 요소 몇몇도 국내 관객에겐 익숙합니다. 가령 “등장인물은 연장자를 공경하고, 아들딸은 효도를 한다”.
그의 언급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인간화(humanize)’입니다.
“한국 드라마는 가장 냉담한 억만장자조차 인간화하고, 관객이 그에게 관심을 갖게 만든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씨 역시 한국 장르물의 특이한 점으로 ‘인간’을 꼽습니다.
“한국 드라마는 어떤 장르든 ‘인간’이 보여야 흥행한다. 미제 사건을 다루는 내용 등의 장르물 가운데 미국에서 먼저 나오지 않은 소재가 있나? K드라마는 이걸 들여와서 한국적 색깔을 입혔다. 같은 범죄물이라도 ‘어떻게 죽일까’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형사가) ‘어떻게 살릴까’도 생각하는 거다. 이게 한국형 장르물의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메시지입니다.
장르물의 형태를 빌려, 사회구성원들이 느끼는 첨예한 갈등 지점을 직설적으로 꼬집는다는 것입니다.
최근 흥행하는 K드라마들이 대체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왜 한국 드라마는 더 직설적이고 사회비판적일까요?
“한국은 서구가 겪은 사회문제를 압축적으로 감당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희생된 것들에 대해 한국 창작자들이 더 민감하다. 개구리 삶는 것과 같다. 서구는 천천히 불을 올렸고 한국은 끓는 물에 빠트렸다. 한국 드라마를 보는 서구 관객들은 자기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다.”
그가 K드라마의 대표적 주제의식으로 꼽은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입니다.
K드라마의 ‘중산층 이데올로기’
기자 출신 아시아 문화 연구자인 정호재씨는 최근 〈다시, K-를 보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정호재 작가는 최근 인기를 얻은 K드라마들이 단순히 ‘사회비판적’인 것을 넘어, 어떤 지향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를 ‘중산층 이데올로기’라고 부릅니다.
양극화된 현실을 비판하며 보통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과 계층 통합을 주된 논제로 올린다는 것입니다.
“K드라마의 주제는 궁극적으로 풍요로운 삶이다. 자가 주택을 갖고 차를 가지고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중산층이 늘어나는, 평등한 사회를 요구하는 지향이다.”
서로 달라 보이는 K드라마들의 교집합이 여기 있다고 그는 봅니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와 달리 〈킹덤〉 속 좀비는 반상이 있고, 사람들의 재난 대처 방법도 계급에 따라 갈립니다.
〈지옥〉의 핵심적 인물 중 하나는 빈곤한 미혼모입니다. 경제적 궁핍에 빠진 자들이 게임에 참여하는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 정호재씨는 “이것은 최근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한 베트남·인도네시아·중국 등 전 세계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봤을 때 K드라마는, K팝보다 〈기생충〉과 훨씬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은 어떨까요.
정호재씨는 중산층으로 통합되는 사회가 ‘미국의 잃어버린 꿈’일 수 있으며, 이런 분위기가 문화산업에도 반영되었다고 진단합니다.
“미국 문화산업의 대작은 주로 SF다. 초현실적 인물과 외계인을 다룬다. 전문직은 수백억 원을 벌고 빈곤층은 의료보험조차 불안정한 사회가 문화산업을 점차 판타지로 이끈 것이다. 자본 게임이 너무 극단으로 흐른 사회에서는 계층 통합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여기에 더해 그는 창작자들의 ‘개인사’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1960~1970년대생 영화·드라마 감독들은 유년 시절 서울의 판자촌을 목격했다. 할리우드 감독들에게 이런 경험이 있을까? 사회가 양극화된 채 수세대가 지나버렸다.”
중산층 이데올로기는 ‘경제 정의’를 넘어선 철학적 가치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드라마, 영화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게임이다. 인간성에 대한 보편적 철학이 들어가야 한다. K드라마의 중산층 이데올로기는 다수 일반인의 평범한 욕망을 겨냥한다. 따라서 도덕적·보편적 인간관을 담고 있다.” 책에서 그는 이 가치관을 두고 ‘아시아적 보편성’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공자의 군자론과 비슷하다. ‘바른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세계 평화를 이야기하고 아이들에게 꿈이 되는 평범한 윤리에 가깝다.”
‘뻔해 보이는’ 윤리를 담은 K드라마 속 대사와 연기는 종종 ‘신파’라는 혹평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레지나 킴에 따르면 예상외로 “미국 시청자 다수는 K드라마의 신파 연기를 극찬한다”.
(신파 : 신파극의 준말
신파극이란 일본에서 서양 연극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근현대 연극의 한 종류를 말합니다.
한국에서 신파극이란 일본과 서양 연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수일과 심순애'같은 연극을 말합니다.
신파극의 특징은 '감정의 과잉'이며 쉽게 이야기하자면 눈물을 짜는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신파 넣지마는 '(필요이상으로 눈물이나)감정을 자극하지마'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식인-)
‘지역적이면서 보편적인’ 작품이 세계에서 통한다는 생각은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 상식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지역적이고 무엇이 보편적일까요.
넷플릭스를 타고 불어온 K드라마 바람은 힌트가 될 만한 사례를 점차 늘려가고 있습니다.
출처:
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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