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책 제목 '블랙 스완'은 서구인들이 18세기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진출했을 때 '검은 백조'를 처음 발견한 사건에서 가져온 은유적 표현이다. 검은 백조의 발견은 백조는 곧 흰색이라는 경험 법칙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행동의 준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이 검은 백조 출현의 경고다.
-10-
탈레브의 논지는 마치 거대한 지식의 계보학을 짜듯, 철학, 역사, 경제학, 경영학, 통계학, 물리학, 수학, 심리학의 영역을 종횡한다.
-11-
<블랙 스완>이 출간된 지 불과 얼마 후에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고, 파국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형 금융사, 증권회사의 파산이 이어졌고, 이것이 세계적인 신용경색을 가져왔다.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주었고, 이는 세계 경제시장에까지 타격을 주어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로까지 이어졌다.
-12-
이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롱 테일(long tail)과 함께 '검은 백조'는 경제경영 분야의 중요한 신개념이 되었다.
-13-
이 사건에는 조류학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관찰과 경험에 근거한 학습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수천 년 동안 수백만 마리가 넘는 흰 백조를 보고 또 보면서 견고히 다져진 일반론이 검은 백조 한 마리 앞에서 무너져 버린 것이다.
-21-
첫째, 검은 백조는 '극단값'이다. 극단값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그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대 영역 바깥에 놓여 있는 관측값을 가리키는 통계학 용어다. 극단값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존재할 가능성을 과거의 경험으로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22-
둘째, 검은 백조는 극심한 충격을 안겨 준다. 셋째, 검은 백조가 극단값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그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 인간은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이 검은 백조를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22-
요컨대 희귀성, 극도의 충격, (선견지명은 아니지만) 예견의 소급 적용, 이 세가지가 검은 백조의 속성이다.
-22-
우리는 몇 마리 되지 않는 검은 백조로써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22-
'발생하지 않을'확률이 높으면 검은 백조가 될 수 있다. 이와 대칭적인 의미에서, 개연성이 거의 없는 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개연성이 매우 높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확률과 대등하다는 점에 유의하자.
-22-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복잡성이 증대하기 시작하면서 이 효과에는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반대로 일상의 사건들, 즉 우리가 신문 따위를 통해 배우고 토론하고 예상하려 하는 보통 사건들은 점점 영향력이 미미해지게 되었다.
-23-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생과 인터넷의 확산, 1987년의 주식시장 붕괴(그보다 더 예상하지 못했던 급속한 시장 회복)도 누가 예상했는가?
-23-
갖가지 유행 풍조, 전염병, 사상, 새로운 예술 장르와 유파의 등장 따위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이 검은 백조의 역학과 관계가 있다. 그야말로 우리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사건과 사물들이 그러하다.
-23-
낮은 예견 가능성과 큰 충격은 검은 백조 효과를 거대한 수수께끼로 비치게 만든다.
-23-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무작위성에 대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맹목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24-
도대체 심대한 결과를 낳을 증거가 명명백백한 굵직한 사건들은 도외시하고 어째서 사소한 일들에만 매달리는 것일까? 덧붙여 내식대로 말한다면, 어째서 신문을 읽으면 오히려 세상에 대한 지식이 줄어드는 것일까?
-24-
인생이란 한 줌에 불과한 의미심장한 사건들이 몰고 온 파장이 쌓인 결과라는 데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4-
검은 백조의 역할을 따져 보는 것은 그저 안락의자에 앉아서, 혹은 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할 수 있을 만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4-
우리 각자가 태어난 이래 발생한 숱한 사건들 가운데 의미심장한 것들, 신기술, 새로운 발명품 등을 떠올려 본 뒤 그것들이 처음 일어났던 당시의 환경에서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실제 결과를 비교해 보라. 예상대로 된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24-
직업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만나고,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배신을 당하고, 갑자기 일확천금이 들어오거나 혹은 빈털터리로 전락하거나 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내린 선택들 가운데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된 일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24-
정책과 현상 사이의 인과 고리를 이처럼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격적 무지 덕분에 검은 백조 효과에 손쉽게 발동을 건다. 마치 어린아이가 화학실험 도구로 장난을 치는 꼴이다.
-27-
실제 드러난 예측 능력을 보면 그들은 경험적 기록에 의존하기 때문에 소위 전문 분야에서도 결코 일반 대중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이 일반인보다 나은 점은 그럴싸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 더 심각하게는 복잡한 수학 모델로 보통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능력,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정장 차림을 좋아한다는 것 뿐이다.
-27-
반지식, 즉 우리가 모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검은 백조 현상에 노출될 기회를 최대한 늘리면 기대 밖의 (유리한) 결과를 뜻밖에 얻는 행운도 늘어날 수 있다.
-27-
예컨대 과학적 발견이나 벤처 투자에서는 미지의 가능성이 엉뚱한 보상을 베풀어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어떤 희귀한 사건에서는 대체로 잃을 것은 거의 없지만 얻을 것은 많기 때문이다.
-27-
따라서 탐사나 경영은 하향식 계획에 의존하는 대신 기회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최대한 이것 저것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마르크스나 애덤 스미스의 후예들과 견해가 다르다. 자유시장이 작동하는 것은 기술이 뛰어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혹은 인센티브 때문이 아니라 누구든 공격적인 시행착오 끝에 행운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8-
따라서 성공의 전략은 간단하다. 최대한 집적거리라. 그리하여 검은 백조가 출몰할 기회를 최대한 늘리라.
-28-
인간은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실, 오직 사실만을 머리에 우겨 넣는다. 이 '메타 원리'(인간은 원리를 습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원리)를 쉽게 습득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우리는 추상적인 것을 얕잡아 본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29-
회귀적(recursive)이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피드백의 순환 고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 피드백 순환 고리를 어떤 사건이 더 많은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게 하고(예를 들면, 사람들이 어떤 책을 사는 이유는 그 책을 남들이 사기 때문이다), 이것이 눈덩이처럼 커지게 해서 마침내 종잡을 수 없는 전 지구적인 '승자 독식'의 효과를 낳는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정보가 엄청난 속도로 유포된으로서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 나간다.
-29-
우리 인간의 직관은 인과관계가 단순하고 정보가 느리게 유포되는 환경에 적응된 것이다
-29-
사고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라는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30-
통념과 달리 많은 증거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적게 생각한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생각하고 있나'를 생각하는 순간일 것이다.
-30-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텔레비전은 '공정한 매체'가 아니라 검은 백조에 눈을 감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32-
수습보다 예방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예방 행위에 보상이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32-
게다가 역사책은 이름 없는 공헌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32-
인생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사건
-33-
친구의 성격이 어떤지, 예의 바른지 품격이 있는지 등을 알려면 장빗빛 일상생활이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를 시험해 보아야 한다.
-33-
사회생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희귀하지만 인과관계가 분명한 충격과 비약에 의해 일어난다.
-33-
정규분포란 큰 편차를 무시하거나 다룰 수 없는데도 마치 우리가 불확실성을 길들이고 있다는 확신을 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이런 따위를 GIF, 즉 '거대한 지적 사기(Great Intellectual Fraud)'라 부른다.
-33-
어떤 목적지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지도를 혼동하는 경향, 즉 순수하고 정교한 형식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나는 그의 사상(성격)에 따라 플라톤적 태도라고 부른다.
-34-
나는 플라톤적 태도가 복잡한 현실과 만나는 폭발성 있는 경계지대를 플라톤 주름지대(Platonic fold)라고 부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간극이 넓어서 위험한 지점, 바로 그곳이 플라톤 주름지대다. 검은 백조는 바로 이곳에서 잉태된다.
-35-
실제로 비트겐슈타인(혹은 비트겐슈타인을 주제로 다룬 글에 관한 논평)을 너무 많이 읽은 사람들은 언어 문제를 중요시한다. 언어에 집착하는 것은 철학자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 세계에서 현업에 종사하며 의사 결정을 내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한가한 주말의 소일거리일 뿐이다.
-36-
강단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판별하지 못한다.
-36-
내가 불확실한 행위라고 부르는 것에는 저작권 도용, 상품 투기, 직업적 도박 행위 등이 포함되는데, 이것들은 마피아 조직은 물론 일반 기업 활동에서도 노상 벌어지는 일이다.
-36-
비유나 이야기는 관념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야기와 비유는 또한 기억하기 쉽고 읽기에도 즐겁다.
-37-
관념은 잠시 왔다 잊혀지지만 이야기는 오래 남는 법이다.
-37-
오늘날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강력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과업이다.
-38-
제5장에서 나는 몇 가지 증거를 살펴보면서 지나치게 유리한 증거만 축적시켜 가는 태도를 '소박한 경험주의'라 지칭하였다.
-38-
이 책에서 나는 우리 인간의 관습적 사고와 반대로 우리가 사는 세계가 극단적인 것, 미지의 것, 개연성이 극히 희박한 것(이때의 개연성이란 우리의 현재 지식에 의거한 판단일 따름이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우리는 익히 알려진 것, 반복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사소한 이야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38-
덧붙여 나는 인간 지식의 진보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진보와 성장 탓에 미래는 갈수록 예측이 어려워질 것이며, 인간의 본성과 사회'과학'은 이것을 감추는 데 진력하고 있다고 과감하게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주장한다.
-38-
고백하건대 나는 그동안 활동하고 소통하는 삶과 단절하고 나서야 생각하고 쓰는 일에 빠질 수 있었다. 이제 책은 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공적 활동의 소란스러움을 피해 철저한 고요 속에서 철학적 과학적 사고를 하는 데 시간을 바치고자 한다.
-39-
읽지 않은 책이 늘어선 대열, 이것을 반서재라 부르기로 하자.
-42-
우리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개인 자산으로 취급하여 지키고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때 지식은 사회적 서열을 표시하는 장식물이다. 이런 지식관은 이미 알려진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서재에 대한 에코의 관점과 상반되며, 우리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편견이기도 하다.
-42-
자신이 배우지 않은 것, 경험하지 않은 것을 적은 '반(反)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다(이것은 그의 경쟁자들이나 할 일이다). 그러나 반이력서를 제출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42-
여기, 아직 읽지 않은 책에 주목하고 자신의 지식을 대단한 자산이나 소유물 혹은 자존심 향상을 위한 도구로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반(反)학자다. 이 반학자를 회의적 경험주의자라고 부르기로 한다.
-43-
나는 또 동일한 검은 백조 효과 내에 존재하는 세 가지 속성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첫 번째는 확인 편향의 오류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서재의 아직 읽지 않은 책을 부당하게 경멸하는 경향(우리의 지식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만 쳐다볼 뿐 우리의 무지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도외시해 버리는 경향)을 일컫는 것으로, 이것이 제5장의 내용이다. 두 번째는 제6장에서 다루게 될 이야기 짓기의 오류다. 이것은 이야기나 일화에 취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경향을 말한다. 세 번재는 우리의 '추론 과정에 개입하는 감정의 문제'로, 제7장에서 다룬다. 네 번째는 말 없는 증거의 문제로 제 8장에서 다루게 되는데, 여기서는 검은 백조를 보지 못하는 데에 역사의 장난이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제9장은 게임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을 지식으로 삼는 데에서 비롯되는 치명적 오류를 다룬다.
-44-
혁명 전의 러시아인들이 그러했듯이, 당시 레반트 지방의 기독교도나 (이스탄불에서부터 알렉산드리아 지방에 이르는 지역에 거주하던) 유대인 상류계급은 스스로를 다른 계층과 구별 짓기 위해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49-
눈에 띄는 복장으로 겉으로만 권위에 도전하기는 쉽지만(사회과학자나 경제학자들은 이를 '값싼 신호'라 부른다), 신념을 기꺼이 행동으로 보이기는 어려운 법이다.
-50-
내 삼촌은 내게 몹시 화를 냈는데, 내 정치적 견해 떄문이 아니라(사상은 변하기 마련이므로) 내가 정치적 신념을 핑계로 단정치 못한 복장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 이유였다. 삼촌은 천박한 행동거지로 일족을 욕되게 하는 것은 죽어 마땅한 일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50-
내가 체포당했던 사건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내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은 십대의 반항심에 빠지지 않게 된 것이었다. 자신의 의지를 말로 하는 것 이상으로 보여 주려면 '합리적인' 호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남들의 예상을 완전히 깨고-동시에 정당성을 인정받으면서-어떤 사람을 고소하거나 적에게 한 방 먹이거나, 최소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입증할 수 있음을 과시할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여유롭게 주변에 마음을 열어 두고 느긋하면서도 용기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50-
암흑이 도래하면 유일한 위안은 하늘을 쳐다보는 일뿐이다.
-51-
역사는 불투명하다. 우리 눈앞에는 역사의 결과물만 나타날 뿐 사건을 빚어내는 설계도도 역사의 동력도 드러나지 않는다.
-52-
역사라는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역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으므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
-52-
그런데 일단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그 뒤에는 그것이 뜻밖의 것이 아닌 듯이 보이게 된다. '소급적 개연성'이라는 것이 작용해서 그것을 희귀한 사건이 아니라 있을 법했던 사건으로 이해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55-
표준적인 역사 기록들은 세계대전이 "긴장이 검증하고" "위기가 고조되는" 과정을 거치며 발발했다고 보지만, 역사가 나이얼 퍼거슨은 오히려 전쟁이 벼락같이 찾아왔음을 보여 준다. 역사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회고적 태도에 젖은 역사가들의 기술이다.
-60-
언론인들은 상황을 범주화하고, 현실을 그 범주에 맞춰 재단해 버린다. 현실을 앙상한 형상에 끼워 맞추는 플라톤적 태도가 여기서도 발휘되는 것이다.
-62-
예컨대 하루에 한 시간을 번다고 하면 1년이면 100권 이상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 20년이면 정말 엄청난 시간이 된다.
-65-
나는 내가 시장가격을 예측하는 데 완전히 무능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무능하긴 마찬가지인데, 다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몰랐고 또 자신들이 거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대부분의 거래자들은 "달려오는 증기기관차 앞에서 동전을 줍고" 있었다.
-69-
'퍽 유어 머니'라는 말이 있다. 표현은 좀 거칠지만, 노예 계약에서 벗어나서 빅토리아시대 신사처럼 살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돈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 완충장치다. 그것은 멋대로 펑펑 쓰고 살 만큼은 안 되지만, 월급에 목을 매지 않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줄 만큼은 되는 돈이다. 그것은 돈에 영혼을 파는 것을 막아 주며, 외부의 권위-어떤 외부의 권위든 간에-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해준다.(독립의 의미는 개인마다 다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수입을 올리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중독되어 고객과 고용주에게 더욱더 아첨하는 모습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70-
나는 천천히 오직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정제하면서 배짱이, 혹은 직업적 명상가가 되어 책상이나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카페나 라운지에 느긋하게 앉아, 누구에게 구태여 설명할 필요 없이 원하는 만큼 자고, 닥치는 대로 읽고 싶었다.
-72-
레바논 전쟁과 1987년의 주가 폭락은 동일한 현상으로 보였다. 이런 사건들의 역할을 인지하는 데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일종의 정신적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72-
문제는 사건들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우리가 그 사건들을 지각하는 방식에 있었다.
-72-
칵테일파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 올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저는 회의적 경험주의자이고 게으른 독서가이며, 한 가지 아이디어를 깊이 파고드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이랍니다." 그러나 나는 리무진 운전기사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72-
예브게니아가 "고집불통에 까탈스럽고 구제 불능인 자기중심병자"에서 벗어나 "끈기 있고 단호하고 꿋꿋하고 독립심 강한" 사람이 되는 데 5년이 걸렸다.
-76-
픽션과 논픽션의 구별은 현대사회의 도전을 견디기에는 너무 케케묵은 것으로 여겨진다.
-77-
진정한 경험주의는 현실을 최대한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또 진실에 충실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거나 그 결과 따돌림을 당하는 것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79-
와튼스쿨 2년차 학생 하나가 내게 '규모가변적인' 직업, 다시 말해서 노동시간에 따라 급여를 받지 않는, 따라서 노동의 총량의 한계에 종속되지 않는 직업을 택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직업을 구분하는 아주 간단 명료한 기준이었으며, 거기서부터 불확실성의 여러 유형들 사이의 구분을 일반화할 수 있었다.
-79-
아무리 멋진 레스토랑을 열어도 최고의 목표는 (프렌차이즈 사업을 한다면 모를까) 좌석을 가득 채우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요컨대 이런 직업에서는 의사 결정의 질이 아니라 줄기찬 노동의 양이 수입을 결정한다. 게다가 이런 직업에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들만 일어난다.
-80-
게으르고, 그 게으름을 오히려 자산으로 여기며, 깨어 있는 시간을 최대한 해방시켜 독서와 사색에 쏟고 싶었던 나는 즉각 결론을 내렸다. 나는 노동을 파는 '노동' 인간과 거래나 약간의 노동의 형태로 지적 산물을 파는 '아이디어' 인간을 구분했다.
-80-
아이디어 인간은 뼈 빠지게 일을 할 필요는 없고 대신 치열하게 생각을 하면 된다.
-80-
아무튼 제대로만 하면 이 직업이 상당한 자유 시간을 허락해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81-
레코드 가수나 연주자, 영화배우라는 직업도 똑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음향 기사나 영사기 기사가 음반이나 영사기를 돌리게 하기만 하면 된다. 그때마다 노래를 부르거나 연기를 하기 위해 현장에 나타날 필요가 없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한 부가 팔리든 수백만 부가 팔리든 글쓰기에 들어가는 노동은 동일하다.
-81-
물론 내게는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시쳇말로 내가 운이 좋아서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82-
규모가변적인 직업은 성공하는 경우에만 좋다. 그러한 직업은 경쟁이 극심하고, 괴물 같은 불평등을 낳고, 너무나 우연적이며, 노력과 보상 사이의 불일치가 너무 크다. 몇몇이 파이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리고, 나머지 대다수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빈털터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
-82-
죽은 호로비츠가 살아있는 피아니스트들의 밥줄을 빼앗은 셈이다.
-83-
진화는 규모가변성이 있는 것이다. (행운에 의해서든 생존경쟁에 의해서든) 승자의 자리를 차지한 DNA는 베스트셀러나 대박 음반처럼 자기 자신을 복제하여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84-
게다가 나는 인간의 사회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축음기가 아니라 문자의 발명이라고 생각한다. 정보를 저장하고 재생산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문자는 위대하지만 불평등한 도구다. 그것은 한층 더 위험하고 고약한 인쇄기의 발명으로 인하여 더욱 증폭되었다.
-84-
문자의 발명은 창작자가 에너지를 추가로 지출하지 않고도 이야기와 사상을 정확하면서도 무한히 복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야기와 사상의 전파를 위해 창작자가 살아 있을 필요도 없어졌다.
-84-
불평등은 약간 나아 보이는 자가 파이 전부를 차지할 때 발생한다.
-85-
영화 같은 예술 분야에서는 이런 상황이 대단히 심각하다. 이 분야에서는 '재능'이 성공을 낳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 '재능'을 낳는다.
-85-
그는 영화가 배우를 만들며, 또 영화의 성공을 만드는 것도 비선형적 행운의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85-
영화의 성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일종의 감염 현상이다. 비단 영화만이 아니라 폭넓은 문화 상품들이 그렇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이 특정한 예술 작품을 사랑하는 것은 예술 그 자체에 매료되어서만이 아니라 특정 집단에의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방을 통해 또 다른 모방자들과 가까워진다. 모방은 곧 고독과의 싸움이다.
-85-
나이키, 델, 보잉 같은 회사들은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조직하고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수입을 거둔다.
-86-
미국 경제는 아이디어 세대를 지렛대 삼아 몇 배 뻥튀기 되었다.
-86-
만약 표본이 크다면, 어떤 단일한 사례가 전체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큰 관측값 하나가 인상적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87-
그야말로 한 명의 거인과 1000명의 난쟁이다.이러한 양상은 학술논문 인용 빈도(논문이 공식적인 학술지에 실린 다른 논문에서 인용되는 횟수), 미디어 노출 정도, 수입, 기업의 규모 등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89-
극단의 왕국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해서 하나의 관측값이 불균형한 비율로 전체에 충격을 가한다.
-89-
몸무게, 키, 칼로리 섭취 등은 평범의 왕국에 속하는 것들인 반면에 부는 그렇지 않다. 사회적 사건들은 대부분 극단의 왕국에 속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양은 정보적인 것이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89-
은행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중요한 무엇이긴 한데, 분명한 것은 그것이 물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에너지 소비를 동반하지 않고도 일체의 가치를 취할 수 있다. 돈은 그저 숫자다!
-89-
이것은 흔히 규모가변성, 지수 법칙, 척도 불변, 레비 안정성, 파레토-지프 법칙, 율의 법칙, 파레토 안정 과정, 프랙털 법칙 등으로 불리는 현상을 생성시키는 무작위성을 포괄하는 범주다.
-92-
조금씩 부자가 되어 가면서 누구나 구두쇠가 되고 돈을 신중하게 다루기 시작하는 법이니까.
-97-
현실이 너무도 자주 신념을 재고하게 만든다.
-97-
사실, 지식을 추구하는 모든 시도는 우리의 직관에 위배되는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 관습적인 지혜와 기존의 과학적 믿음들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97-
과학자들이 하는 일은 앞선 과학자들이 해놓은 일들을 조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97-
거물들은 자신들의 직업이 다가올 미래에 샅샅이 해부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97-
우리는 우리가 아는 바를 어떻게 아는가?
-98-
칠면조는 믿음의 수정을 강요받는다.
-98-
과거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미래를 알 수 있는가, 좀 더 일반화해서 이미 알고 있는 (유한한) 것에 근거하여 미지의 (무한한) 것의 속성들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98-
귀납적 지식의 가장 우려스러운 측면인 소급 학습
-99-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이다.
-100-
우리가 검은 백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이유는 과거의 관찰을 미래를 결정짓는 것, 혹은 미래를 표상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100-
1982년 여름,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그때까지 벌어들인 (누적) 수익에 거의 근접하는 금액, 그러니까 미국 금융업 역사에 기록된 거의 모든 수익금을 잃어버렸다.
-102-
그때까지 은행들은 모든 사람들, 특히 자기 자신들에게 자신들은 '보수적'이라는 믿음을 갖게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은행업은 보수적이지 않다. 파국적인 큰 손실의 가능성을 양탄자로 덮어 버림으로써 현상적으로는 훌륭하게 스스로를 기만해 왔다.
-102-
역사의 변화나 기술 발전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검은 백조다.
-104-
결과의 귀추를 의심하는 것은 냉정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107-
고대 회의주의자들은 '학습된 무지'를 정직한 진리 추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반면에, 후대의 중세 회의주의자들은 모슬렘이든 기독교도든 간에 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 부르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회의주의를 채택했다.
-109-
박식함은 진정한 지적 호기심의 징표다. 자연히 열린 마음과 타인의 사상을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딸려 나온다.
-110-
단언하건대, 소양 없는 학위는 재앙을 낳는다.
-110-
만에 하나 검은 백조 문제를 알게 됨으로써 자칫 우리가 위축되거나 극단적인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면, 나는 차라리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겠다. 나는 행동과 진정한 경험주의에 관심이 있다.
-110-
다음은 검은 백조를 도외시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점들.
1. 보이는 것들 중에서 보고 싶은 부분에만 집중하며, 그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일반화시킨다.
→ 확인 편향의 오류.
2. 인간은 명확한 패턴을 좇는 플라톤주의적 갈증에 부합되는 이야기로 스스로를 속인다.
→ 이야기 짓기의 오류.
3. 검은 백조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동한다.
→ 인간은 검은 백조에 대비해 프로그램되지 않았다.
4. 우리가 보는 것이 거기에 있는 전부는 아니다. 역사는 검은 백조들을 우리 눈에서 가려 버리며, 그리하여 이러한 사건들의 확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든다.
→ 이것은 말 없는 증거에 의한 왜곡이다.
5. '땅굴 파기'에 몰입한다.
→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검은 백조들은 포기한 채) 잘 정의된 몇몇 불확실성의 원천들, 즉 지나치게 명확한 검은 백조 리스트에만 집중한다.
-112-
결론 부분에서는 이것들이 동일한 논제의 갈래들임을 밝힐 것이다.
-112-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명제와 '출현할 가능성이 없다는 증거가 있다'는 명제 사이에는 엄청난 논리적 거리가 있지만, 우리 인간의 마음에서는 그 거리가 매우 좁아지며, 그 때문에 사람들은 둘을 쉽게 혼동한다. ... 나는 이것을 '왕복 여행의 오류'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이 두 가지 명제는 상호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114-
그러나 우리는 이 사소한 논리적 오류에 면역이 되어 있지 않다.
-114-
우리는 웬만큼 집중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 문제를 단순화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렇게 하도록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114-
한 상황에서 배운 지식과 추론을 다른 상황에 자동적으로 응용하는 능력의 부재, 이론을 현실에 응용하는 능력의 부재는 참으로 안타깝지만 우리 인간의 선천적 속성이다. ... 이러한 속성을 반응의 영역 특정성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여기서 '영역 특정성'이란 말은 어떤 문제에 대한 인간의 반응, 사고방식, 직관 따위가 그 문제가 제기된 맥락에 종속된다는 뜻으로, 진화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대상 혹은 사건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116-
예컨대 강의실과 실생활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어떤 정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그 정보의 타당성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틀에 따라, 우리의 사회적·감정적 시스템과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116-
강의실에서는 논리적으로 접근했던 문제가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다르게 취급될 수 있는 것이다.
-116-
지식은 설령 그것이 정확한 것일지라도 적절한 행동을 이끌어 내지 못할 때가 많다. 그 까닭은 우리는 자신이 아는 것을 망각해 버리거나, 자칫하면 그 지식을 적절히 처리하는 방법을 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통계학자들은 강의실을 떠날 때 뇌를 두고 나오는 경향이 있어서 거리에서는 너무나 사소한 추론 오류에 빠지곤 한다.
-116-
이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두뇌 장치(이것을 모듈이라고 한다)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논리적 규칙들에서 출발하여 그것들을 가능한 모든 상황에 똑같이 적용하는 만능 중앙처리장치가 우리 뇌에는 없다.
-117-
의학과 관련된 글에서 흔히 사용되는 NED라는 단어는 '질병의 증거 없음(No Evidence of Disease)'의 약어다. END, 즉 '질병 없음의 증거(Evidence of No Disease)'라는 용어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118-
과학이 오만을 떨던 1960년대에 의사들은 모유를 실험실에서 간단히 복제할 숭 ㅣㅆ는 원시적인 어떤 것으로 얕보았다. 그들은 모유 속에 당대의 과학적 이해를 벗어나는 유용한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깨닫지 못했다. 이것 역시 모유의 이점에 대한 증거 없음과 이점 없음의 증거를 혼동한 간단한 오류였다(분유를 먹이면 되지 굳이 왜 모유를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플라톤주의의 또 다른 사례다).
-118-
모유에는 아직도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유용한 성분들이 더 들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예컨대 유방암 발병률이 낮아지는 것과 같은, 모유 수유가 어머니에게 주는 이점도 무시되었다.
-118-
편도선의 경우도 비슷하다. 편도선을 절제하면 후두암 발생률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의사들은 이 '쓸모없는' 기관이 자신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쓸모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119-
나는 의사들이 신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단언적인 신념, 폐쇄적인 신념은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119-
내가 소박한 경험주의라고 부르는 정신 작용 때문에 우리 인간은 자신이 말하는 세계, 자신이 그리는 세계를 확인해 주는 사례들만 찾는 선천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119-
우리는 입증이 아니라 부정적인 사례들을 통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121-
아무리 관찰을 해도 내가 계속 의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단 한 번의 관찰만으로도 안심하고 확신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관찰의 결과는 일방적이다.
-121-
엄청난 양의 자료가 전혀 쓸모없는 경우도 있고, 단 하나의 정보가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경우도 있다.
-121-
'우리'는 불확실성이야말로 자신의 전공과목임을, 그리고 불완전한 정보라는 조건 아래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지고하며 가장 긴급한 우리 인간의 목표임을 명심하고 있는 경험주의적 의사결정자들이다.
-122-
그는 내가 프롤로그에서 기술했던 논증에 따라 인간의 정신을 폐쇄적으로 만든 장본인으로 플라톤을 지목하고 있다.
-122-
물론 '반증하기,' 즉 완전한 확실성을 가지고 뭔가가 틀렸다고 진술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123-
암세포를 수색하는 의사가 시각적 착각을 야기하는 결함 있는 장비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가 의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정규분포곡선에 도취된 경제학자의 사고에 젖은 사람일 수도 있다.
-123-
그러나 이 본능은 오늘날과 같은 문자 발명 이후의 시대, 즉 정보 집약적이고 통계적으로 복잡한 환경에는 필시 부적합하다.
-127-
오늘날 지진이나 태풍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극심해지고 있다. 이는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 사이의 관계가 밀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미미한 영향만 끼쳤던 것들이 이제는 큰 충격을 몰고 온다.
-128-
2004년 가을 나는 로마에서 열린 미학 및 과학에 관한 학회에 참석했다. 아마도 로마는 이런 주제의 학회를 열기에는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거지나 목소리 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미학이 스며들어 있는 도시가 로마다.
-130-
설명은 사실들을 엮는 작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보다 기억하기가 용이해지며, 납득하기가 용이해진다. 길하여 우리가 이해했다는 느낌이 증폭되는 그 순간, 이러한 습성은 과녁을 빗나간다.
-132-
사후 합리화(사건들의 단순한 선후 관계를 인과관계로 혼동하는 오류).
-134-
정확히 말하면 좌뇌는 패턴 인식을 수행하는 부위가 존재하는 곳으로, 언어가 패턴 인식적 속성을 갖고 있는 한에서만 좌뇌가 언어를 관장한다.
-136-
우뇌는 일련의 사실들(개별적인 것, 즉 나무들)을 보는 반면에 좌뇌는 패턴(일반적인 것, 즉 숲)을 지각한다.
-136-
의미와 개념을 집어넣으려는 인간의 성향은 개념을 구성하는 세부사항들에 대해 지각을 차단한다. 그래서 좌뇌 활동을 억제하면 좀 더 '사실적'이 되는 것이다.
-136-
그래서 좌뇌 활동을 억제하면 좀 더 '사실적'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물의 그림을 극히 세밀할 정도로 그려 내게 되고, 대상을 그 자체로 보는 데는 능해지는 대신에 이론·이야기·선입견 따위는 제거해 버린다는 것이다.
-136-
해석 작용을 피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이탈리아인 교수 일화에서 보았듯이 인간의 뇌 기능이 종종 지각의 바깥에서 작동한다는 것이 그 열쇠다. 마치 호흡처럼, 해석 작용은 자동화된 통제력 바깥의 다른 활동들을 수행하면서 동시적으로 행해진다.
-137-
그렇다면 이론화하지 않기가 이론화하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지출하게 만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그러한 작용의 불가입성(개입하기 어려운 성질-옮긴이)이다. 앞에서 나는 그러한 활동의 대부분이 우리의 의식 바깥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자신이 추론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상태라면 지속적인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을 중단할 수 있겠는가? 또 지속적으로 경계 태세를 취한다면 피곤하지 않겠는가?
-137-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패턴 인식 능력은 뇌에 도파민이 집중될 때 증가한다고 한다. 도파민은 또한 기분을 조절하고, 뇌 내부의 보상 체계를 유지해 준다.
-137-
도파민 공급이 늘어날수록 회의주의적 태도는 감소하고 패턴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137-
도박벽은 무작위 수에서 일정한 패턴을 읽어 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지식과 무작위성 사이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
-138-
내 말의 핵심은 그러한 작용에는 생리적·신경학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 인간의 마음은 대체로 인간 신체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138-
인간의 마음은 생물학의 포로로 수감된 처지여서 정교한 탈출 계획 없이는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138-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추론을 통제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이다.
-138-
어쩌면 내일 누군가가 인간의 패턴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또 다른 화학적 혹은 생물학적 근거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또는 좀 더 복잡한 어떤 체계의 역할을 밝힘으로써 좌뇌-해석자 가설을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인과관계 인식이 생물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138-
인간의 이야기 짓기 성향에 대해 더 심오한 또 다른 근거가 있는데, 그것은 심리학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시스템 내에서 정보의 저장과 검색에 미치는 질서의 효과와 관련이 있다.
-138-
확률과 정보 이론의 핵심 문제. ...
첫 번째 문제는 정보는 얻는 데 비용이 든다는 것.
두 번째 문제는 정보는 뉴욕의 부동산처럼 저장하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는 것. ...
마지막으로, 정보는 조작하고 검색하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
-139-
더 질서 있고, 덜 무작위적이고, 패턴이 있고,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을수록 일련의 사실들을 마음속에 저장하거나 하다못해 먼 훗날 손자손녀들이 읽을 수 있도록 책의 형태로 긁적거려 놓기가 쉽다.
-139-
뇌세포는 1000억 개가 넘기 때문에 저장 능력 자체에는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정보 색인 작업이다. 의식기억 또는 작업기억, 즉 여러분이 지금 이 문장을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억은 전체 기억 공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139-
의회도서관 장서가 얼마나 되든, 대출할 수 있는 책이 몇 권이나 되든, 그 책상의 크기로 인해 작업의 한계가 설정된다. 따라서 의식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데에는 압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39-
가령, 단단하게 결합된 단어 덩어리로 500쪽짜리 책 한 권을 구성한다고 해보자. 만일 이 단어들이 사전에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뽑아낸 순수하게 무작위적인 것들이라면 우리가 의미 있는 뭔가를 놓치지 않으면서 이 책을 요약하거나, 전달하거나, 혹은 환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139-
패턴, 즉 연쇄의 규칙을 발견하면 더 이상 전체를 다 기억할 필요가 없다. 패턴만 저장하면 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패턴은 날 정보에 비해 명백히 훨씬 더 압축적이다.
-140-
위대한 확률론자인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콜모고로프는 이런 맥락으로 '무작위 정도'의 개념을 정립했다. 이 개념은 그의 이름을 따서 '콜모고로프의 복잡성'이라 불린다.
-140-
우리는 영장류 가운데 인간 종의 성원으로 규칙에 대한 허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어진 문제의 차원을 축소시켜 그것들을 우리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한 것이다. 아니, 안타깝지만 우겨 넣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정보가 무작위적일수록 차원이 더 커지며, 따라서 요약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140-
거꾸로, 요약할수록 더 질서 정연해지고 무작위성은 감소한다. 말하자면, 단순화를 강요하는 바로 그 조건이 세계를 실제보다 덜 무작위적인 것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이다.
-140-
검은 백조는 단순화 작업에서 버려지는 부분이다.
-140-
예술적 작업과 과학적 작업도 차원을 줄이고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인간 욕구의 산물이다.
-140-
우리를 둘러싼 세계, 수조 개의 세부요소로 가득 찬 세계를 생각해 보라. 그 세계를 기술해 보라. 아마 여러분은 한 가닥의 실로 세계를 직조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40-
소설, 이야기, 신화, 민담 등은 모두 똑같은 구실을 한다. 그것들은 세계의 복잡성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해 주며, 우리에게 세계의 무작위성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제공해 준다. 신화는 인간 지각의 무질서와 지각된 '인간 경험의 카오스'에 질서를 부여한다.
-140-
실제로 심각한 심리적 질병들은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력 -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 능력- 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동반한다.
-141-
예술과 달리 과학의 목적은 조직된 느낌을 얻거나 기분을 전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는 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식을 심리 치료 요법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141-
이야기와 인과관계에 대한 집착은 차원 축소하기라는 동일한 질병의 다른 징후들이다.
-142-
우리는 기억이 견고하고 불변이며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고 믿지만, 이는 사실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야기 짓기에 들어맞는 쪽으로 정보를 사후에 선택함으로써 기억이 더욱 생생해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어떤 기억들은 만들어진 것이다.
-143-
편집증에 걸린 사람들의 행동을 생각해 보자. 나와 같이 일하던 동료 중에 평소에는 편집증을 숨기다가도 가끔 드러내던 사람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옆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정말로 그럴듯하게 내놓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내가 뭔가 좋지 않는 세상 일에 대해 언급하다가 "난 ...할까 봐 두려워"라고 말하면 그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내가 진짜로 어떤 공포감 같은 것을 겪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내 말이 편집증을 앓는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공포 경험을 격발시키는 것이다. 이런 증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하찮은 일도 하나하나 긁어보아 자신에 대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논리를 정교하고 일관되게 만들어 낸다.
-144-
고통스러운 증상에 시달리는 환자로 하여금 매일 15분씩 그 고통을 일기로 쓰게 하면 한결 나아진다고 한다. 이런 방식을 적용하면 죄의식이나 책임감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어차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니까."
-146-
무작위성이 지배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사후 결과를 기준으로 과거의 행동을 평가하는 소모적인 굴레에 얽매이기 쉽다. 일기를 쓰는 일 따위는 이런 분야에서 최소한의 출발점이 된다.
-147-
재미있는 점은, 운동 선수들이 불법 약물을 복용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dope'라는 단어가 도파민(dopamine)과 같은 어근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147-
사람들은 '민족성'이라는 이야기를 꾸며 냄으로써 스스로를 기만한다.
-148-
신문은 순수한 사실만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국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식의 원인 진단을 했다는(혹은 새로운 지식을 축적했다는) 인상을 주도록 꾸며진 이야기를 짓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사실 검증 부대는 있을 수 있지만 '지적 검증 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149-
평판에 연연하는 언론인이나 유명 지식인들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명쾌하게 꿰뚫어 보지 못하게 하는 데에도 일조한다. 이들은 세상을 실제보다 더 복잡다단하게 느껴지게 한다.
-149-
과학자 역시 인간이기에 다른 문제보다 자신의 연구가 더 주목받기를 원한다. 이런 성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 연구 자체를 분석하는 '메타 연구'가 필요하다. 메타 연구란 남들의 이목에서 소외된 논문을 포함하여 넓은 시야에서 전체 연구논문들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을 말한다.
-150-
'무엇 무엇으로 인한...'이란 표현은 문제를 더욱 그럴듯한 것, 다시 말해 더욱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느껴지게 한다.
-151-
'흡연으로 인한 암'이란 표현은 특별한 원인을 적시하지 않은 일반적 암을 가리킬 때보다 더욱 그럴 법한 것으로 느껴진다. 요컨대 구체적으로 지칭되지 않은 원인은 원인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151-
요컨대 우리는 검은 백조 출현을 상상하고 논의하고 걱정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검은 백조는 실제 출현할 검은 백조를 닮지 않은 것이다. 다음에 살펴보는 것처럼, 우리는 엉뚱하게도 '일어남 직하지 않은' 사건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152-
희귀한 사건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검은 백조로, 사람들의 입에 이미 오르내리고 있어서 텔레지번에서 들을 수도 있는 검은 백조다. 둘째는 기존의 이론틀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검은 백조다.
-152-
'손실이 적을 사고에 대비하는 보험 선호 경향'
이는 가능성이 적되 충격은 더 큰 사고에 대비하는 일을 포기하는 경향이다.
-153-
우리는 두 번 일어나지 않는 사건은 무시하다가, 일단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한동안) 이번에는 이를 과대평가한다. 2001년의 9·11 사건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여전히 낮을텐데도 비슷한 사건이 언제든 또다시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154-
앞으로 어떤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무작위적인 확률밖에 부여할 수밖에 없는 추상적인 상태에 있을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특정의 익숙한 검은 백조만 손에 꼽고 있는 것이다.
-154-
위기가 보이지 않는 안정기에는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가 일어난다. 이 시기에는 문제가 발생할 확률을 낮게 평가한다. 이윽고 위기가 도래하면,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자산 투자를 두려워한다.
-155-
기이한 점은 민스키를 비롯한 포스트케인스주의자들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학파'라 불리는 반대 진영의 자유주의자들 역시 유사한 분석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밝혀낸 사실은 동일하지만 처방은 반대다. 즉 첫 번째 부류의 경제학자들은 경제 주기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개입을 권유한 반면, 두 번째 부류의 경제학자들은 공무원들이 이런 과업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두 학파는 이처럼 주장이 서로 상충되긴 하지만, 경제가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에 지배받는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주류 경제학파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55-
스탈린은 사람의 목숨 값이 어떤지를 잘 알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말한 바 있으니 말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 숫자다." 통계란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156-
테러리즘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지만, 가장 무서운 살인자는 환경 재앙이다.
-157-
우리는 자연이 몰고 오는 피해보다 사람이 만들어 내는 피해에 더 큰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157-
인간의 인식을 피상적으로 만드는 사고와 판단의 좀 더 일반적인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판단 및 의사 결정 연구 학회(Society of Judgment and Decision Making)'의 학자들은 인간의 사고 능력에 나타나는 이러한 결함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 왔다. ('판단 및 의사 결정 연구 학회'는 내가 가입한 유일한 학술 전문 학회이기도 하다. 나는 이 학회의 회원인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이 학회의 행사에 참가할 때만큼은 어깨에 힘도 빼고 느긋함을 유지할 수 있다.) 이 학회는 대니얼 카너먼, 아모스 트베르스키를 필두로, 로빈 도스, 폴슬로빅 등의 학자들이 시도한 연구에서 태동했다. 학회 성원은 대부분 경험심리학자와 인지과학자들로, 이론은 최소한으로만 유지하는 대신 (물리학적 실험과 같은) 정밀하고 통제된 실험을 통하여 인간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이 보이는 반응을 목록화하는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
-158-
인간의 행동은 사고 유형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는데, '시스템 1'과 '시스템 2' 즉 '경험적 사고'와 '인지적 사고'가 그것이다.
-159-
시스템1(경험적 사고)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의식적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병렬처리로 작동되며, 그 자체에는 오류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직관'이라 일컫는 것으로,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블링크Blink>로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는 이 막강하고 재빠른 능력을 '순식간에(blink)' 수행한다.
-159-
시스템 1은 고도로 정서적인데, 그 작동 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시스템 1은 '휴리스틱스'라고 알려진 지름길을 만들어 내는데, 이 지름길 때문에 빠르고 효율적인 작동이 가능해진다.
-159-
시스템 2(인지적 사고)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기(thinking)라고 부르는 것이다.
-160-
시스템 2는 느리고, 논리적이며, 생각에 생각을 잇고, 계속 발전시켜야 하며, 자기의식적이다(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사고가 필요하다).
-160-
추론 과정에서 빚어지는 대부분의 오류는 실제로는 시스템 2를 작동시키면서도 스스로는 시스템 1을 작동시키고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생겨난다.
-160-
어머니 자연이 시스템 1이라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한 것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신속히 이를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저 앞에 호랑이가 신기루가 아니라면 덮쳐 올 것이 뻔한데 죽치고 앉아 생각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럴 때는 호랑이라는 존재를 '생각'하기 전에 즉각 달아나야 한다.
-160-
시스템 1이 우리의 신속한 행동을 유도하게 하는 무기는 감정이다. 감정의 작용 덕택에 우리는 인지 시스템을 작동하는 것보다 훨 신 효율적으로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161-
감정 체계를 연구하는 신경생물학자들은 위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위험에 대한 의식적 인지보다 훨씬 먼저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혀냇다. 우리는 뱀이 나타났음을 깨닫기 1000분의 몇 초 전에 공포를 느끼면서 반응을 시작하는 것이다.-161-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이 낳는 문제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시스템 2를 여름 휴가처럼 긴 기간 동안 투입하지 않고도 빠르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 게다가 우리는 시스템 2를 작동시키는 일도 잊어버리곤 한다.
-161-
뇌를 믿지 말라!
-161-
주목할 점은 신경생물학자들도 해부를 통해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차이로 보이는 것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르면 뇌에는 각각 대뇌피질과 변연계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고 한다. 대뇌피질은 생각하는 용도로 작동하며,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반면에 변연계는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의 중심에 놓여 있으면서 빠른 반응 속도를 특징으로 하는 곳으로,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는 없다.
-161-
검은 백조란 우리에게 너무 추상적인 개념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미 발생한 사건을 시시콜콜하고 생생하게 바라보는 데에만 정신을 빼앗기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검은 백조의 출현을 염려하긴 하지만, 엉뚱한 쪽으로 근심을 한다.
-163-
이야기 짓기의 오류를 피하려면 이야기, 역사 경험담 등을 대하더라도 실험자와 같은 자세를 견지해야 하며, 이론 앞에서도 임상의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분명히 신문은 검증 실험을 할 수 없다. 신문은, 마치 이 책에서 내가 취한 방법처럼, 여러 개 중의 하나만 뉴스로 선택할 뿐이다.
-163-
지적∙과학적∙예술적 활동은 극단의 왕국에 속하기 때문에 성공의 기회가 극소수에게만 쏠리며 이 극소수의 승자가 꿀단지 쏙에 든 꿀 대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보기에 재미있고 '흥미 만점'이라고 느껴지는 전문적 직업 세계는 모두 이 원리가 지배한다(이 반대의 경우, 즉 평범의 왕국에 속하지만 흥미가 있는 직업이 있을지는 나도 궁금하다).
-165-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규칙성이라는 허구적 보상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호르몬 체계 역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야금야금 늘어나는 보상 방식을 원한다. 이러한 보상 체계에는 안정과 편안함이 지배하는 세계관이 깔려 있기 때문에 확인 편향의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165-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로 소중하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음도 발견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것을 관찰하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안 것 아닌가.
-166-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매달려 있는 직업은 꼬박꼬박, 즉각적으로, 결과물을 내주는 일이 아닌 반면, 주변 사람은 정반대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우리는 곤혹스럽다. 바로 이런 상황이 오늘날 사회에 비치는 과학자, 예술가, 연구자들의 모습이다. 이들이 예술가 마을처럼 고립된 자기들만의 세상에 살지 않는 한 이런 형국은 피하기 어렵다.
-167-
보상은 막대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하는 직업은 매우 많은데, 이것들은 대체로 소명 의식이 없으면 일하기 어려운 일이다.
-167-
예컨대 (악취 나는 실험실에서) 암 치료법을 끈덕지게 연구하거나, (자신은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우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달리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을 쓰거나, 작곡을 하거나, 고매하신 '학자'인 해럴드 블룸의 악평에도 아랑곳없이 지하철에 그림을 그려 놓고 고품격 예술로 자부하는 일 따위가 그런 일이다.
-167-
분석가는 꾸준한 실적을 중요시하지만 우리가 제일 해내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꾸준한 실적이다.
-168-
많은 사람들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며 일생을 보내지만, 제대로 된 실적을 올리는 기간은 길지 않다.
-168-
"그래 올해는 어땠어?"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볍지만 따끔한 고통이 가슴을 찌른다.
-168-
거듭되는 실패를 겪을 때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보답이란 참으로 힘겹기 짝이 없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지옥은 타인들이다.
-168-
우리의 직관은 비선형적인 일은 잘 포착하지 못한다.
-168-
세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때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본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저절로 감각할 수 있는 것에 주의가 쏠린다. 실제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보다 감각 가능한 것이 우리의 관심을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169-
하여간 이 안내 시스템이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사이의 공진화 과정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이 잘못된 안내 시스템이 지리한 것, 감각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를 갖는 세계에 이식되어 버린 것이다.
-169-
그렇지만 현대 사회의 현실은 일직선적으로 예외 없이 대응하여 나타나는 혜택을 베풀어 주지 않는다.
-169-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 년 내내 매달려도 아무 진전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이때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미리 포기해 버리지만 않는다면 번개처럼 해결책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169-
선형적, 즉 일대일 대응 원리가 지배할 경우 변수들의 관계는 언제나 명백하다.
-170-
이런 비선형적 관계는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작용한다. 선형적 관계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170-
우리는 감각할 수 있는 것,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것을 선호한다. 우리가 받드는 영웅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손에 잡히지 않는 업적을 내놓는 영웅, 혹은 결과보다 과정에 주력하는 영웅은 우리 인간의 뇌리에 자리 잡지 못한다.
-171-
흄과 같은 최고의 철학자도 (검은 백조 현상을 다룬 대작임이 뒷날에야 밝혀진) 자신의 대작이 어떤 얼빠진 평자에게 혹평을 당하자 몇 주씩 몸져누운 적이 있다. 그 평가가 잘못된 것이며 논점도 완전히 잘못 짚은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충격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172-
한 가지 목표에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은 (도래할 가능성이 대체로 없는) 그날을 기다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견뎌 낸다.
이런 사람들은 삶의 자잘한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카푸치노 커피가 너무 뜨겁든 혹은 차갑든, 웨이터가 미적거리든 아니면 이래라저래라 간섭이 많든, 음식에 양념이 너무 많이 들어갔든 아니면 너무 적게 들어갔든, 호텔 숙박비가 광고에 나온 것보다 비싸든 싸든 괘념하지 않는다. 더 원대하고 멋진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172-
그러나 물질적 목표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고통에 둔감하지는 않다. 특히 남들의 조롱을 받을 때에 그들은 참지 못한다.
-172-
우리의 행복은 한 번의 즐거움이 얼마나 강력한가보다는 심리학자들이 '긍정 효과'라 일컫는 긍정적 감정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에 훨씬 더 좌우된다.
-173-
수천 년이 넘도록 우리가 가장 크게 느끼는 만족은 먹을 것과 마실 것(그리고 좀 더 은밀한 것까지)이 아니었던가. 쾌락이 이렇게 꾸준히 주어질 때 우리의 만족은 금방 최고조에 달한다.
-174-
예브게니아 크라스노바는 한 사람이 사랑하는 책은 한 권, 아니 많아야 두어 권을 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을 넘으면 잡탕이 된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을 줄줄이 늘리는 데 집착하는 사람은 우정에 진지하지 못한 것처럼, 책을 상품으로 여기는 사람은 진실되지 못하다.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 그 책을 읽고 또 읽는 동안 작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 간다. 마치 친구를 대하듯, 좋아하는 작품이 생기면 우리는 그 작품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지 '평가'하지 않는다.
-175-
몽테뉴는 '왜' 작가 에티엔 드 라 보에티와 친구가 되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치 답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건네 온 질문이었다. 몽테뉴는 이렇게 답했다. "그가 에티엔이고 내가 몽테뉴였다는 것, 그게 이유올시다."
-175-
사상의 역사만 살펴보더라도 사상의 유파가 결집하여 사회가 관심을 두지 않던 비상한 업적을 쌓는 경우를 찾을 수 있다. 스토아 학파, 아카데미 회의학파, 견유학파, 피론주의 회의학파, 에세네파, 초현실주의파, 다다이스트, 무정부주의자, 히피, 근본주의자 등등이 그렇지 않은가.
-178-
사회의 인정을 받을 길이 요원한 독특한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도 동료를 찾고 외부와 격리된 소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학파라는 존재의 덕목이다.
-178-
검은 백조가 나타난다는 쪽으로 거는 유형과 나타나지 않는다는 쪽에 돈을 거는 유형이 있다. 두 유형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심리적 경향의 소산이다.
-181-
성공의 확률이 적어도 열매가 클 때에는 투자할 만하다고 여기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투자 전략을 이행하는 데에는 대부분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전략이 성공하려면 마음이 절대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순간을 끈기 있게 기다리며 고객이 내뱉는 침을 눈 깜짝 않고 견뎌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82-
마치 이마에 물 한 방울씩을 떨어뜨리는 악명 높은 물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소소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손실 때문에 그의 몸은 하루 종일 신경생물학적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투자 손실의 충격이 대뇌피질을 우회해 정서 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전파되어 해마에 서서히 영향을 미침으로써 기억력이 감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네로는 깨닫게 되었다.
-183-
해마는 기억을 관장한다고 알려진 뇌의 한 부위로서, 뇌 중에서도 가장 유연하고 예민한 부분이다. 주위의 조롱을 받아 부정적 감정이 날마다 조금씩 쌓이는 고질적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이 충격을 모두 흡수하는 기관도 해마라고 추정되고 있다.
-183-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사소하고 무해해 보이는 스트레스 유발인자는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를 이루는 중요 기관을 죽이는 것이다.
-183-
네로의 신경생물학적 시스템은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것에 반응하는 '확인 편향'의 희생물이 되었지만, 그의 뇌는 장기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덕택에 그것의 악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84-
오랫동안 손실이 이어졌을 때에도 네로는 죄송하다는 자세를 투자자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투자자들은 역설적으로 네로가 도도하게 굴수록 네로를 믿어 주었다.
-184-
그러므로 개인적 접촉을 할 때에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각별히 자연스럽게 유지해야 한다. 정중하고 친근한 태도를 보여 줄수록 자신감은 더욱 돋보이고,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184-
내가 패배자로 행동하면 상대도 나를 패배자로 대우한다. 이것이 네로가 얻은 교훈이다. 우리를 평가하는 척도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잘 되고 못 되고의 절대적 척도는 없다. 우리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185-
중요한 것은 침착하고 위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185-
"그런데, 기도하고도 빠져 죽은 사람의 그림은 어디 있소?"
-187-
우리는 이런 것을 '말 없는 증거'라고 부른다. 간단하지만 의미심장하고 보편적인 뜻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자신들 이전에 나타났던 사람들을 조롱했지만, 키케로는 자신보다 후대에 올 사람들, 게다가 오늘날의 사람들까지 꼬집었다.
-187-
이때 일어나는 왜곡을 나는 편향, 즉 눈에 보이는 것과 실재 사이의 차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편향이란 마치 몸무게를 언제나 몇 파운드씩 높게, 혹은 낮게 표시하는 저울이나 허리둘레를 꼭 몇 치수씩 늘려 보여 주는 비디오카메라처럼, 어떤 현상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 효과를 일관되게 나타내는 체계적 오류를 가리킨다.
-188-
언론이란 왜곡을 생산하는 산업 아닌가.
-189-
말 없는 증거는 발생 확률을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속성을 숨긴다.
-189-
생각을 직업으로 하는 분야에서 베이컨 정도의 철저성을 발휘하는 사람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189-
회의적인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철저히 경험주의적인 과학자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회의주의와 경험주의를 철저히 결합하는 일이다.
-189-
일부 알려진 사실이지만, 페니키아인들은 알파벳 문자를 고안해 냈으면서도 정작 이 문자를 이용한 글은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았다. 논평가들은 페니키아 인들이 기록의 전통을 갖지 않은 '무교양'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페니키아인들이 인종적·문화적 요인 때문에 예술보다는 상업 활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그러나 오늘날에는 페니키아인들이 많은 문헌을 기록으로 남겼을 것으로 인정된다. 다만 이들 문헌이 쉽게 상하는 파피루스 종이에 씌어진 탓에 시간에 따른 부패 작용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190-
우리는 보이는 그대로를 즐겁게 받아들이곤 하지만 남들의 성공담을 아무리 읽는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전체를 조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0-
말로는 작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로) 카푸치노 기계를 조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문학 분야의 불평등은 예컨대 의료계 내의 불평등보다 크다. 의사들이 아르바이트로 햄버거를 파는 일을 본 적은 없으니까 말이다.
-191-
찰스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빅토르 위고, 스탕달, 말라르메, 사르트르, 카뮈, 발자크 등 소수의 작가만이 이름을 올릴 수 있는데, 작가이자 모험가였던 앙드레 말로는 생존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192-
우리는 회고적 결정, 즉 이미 지난 사건을 재구성하여 합리화하는 사고에 입각하여 성공 혹은 실패의 '원인'을 찾아낸다. 일의 원인을 찾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195-
살아남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207-
"어쨌든 그것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 과도한 낙관주의의 정당화가 인간 본성에 대한 그보다 더 심각한 오해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 오해란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생겨먹었다는 것, 우리의 결정이 지금까지, 또 지금도 우리 자신의 선택의 산물이라는 믿음이다.
-210-
항생제가 수십 년만 늦게 발견되었더라도 지금의 나는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212-
거듭 말하거니와 원인이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므로, '왜냐하면' 이라고 말할 때에는 극히 회의적이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215-
그는 '뚱보 토니'라는 별명에 개의치 않긴 했지만 그냥 토니라고 불러 주면 좋아했다.
-217-
그는 출퇴근 노동도 회의도 필요 없이 자기 방에서 여흥을 즐기듯 간단히 거래만 벌이면 그만이었다.
-218-
토니와 함께 한두 블럭을 걷노라면 세상이 그에게 '자진해서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여겨진다.
-218-
토니는 레스토랑 사장에게 자금을 안겨 주는 사람이지만(토니가 나타나면 레스토랑 사장들은 얼굴에 광채를 띠고 요란하게 포옹을 한다), 존은 아침마다 꼼꼼하게 플라스틱 도시락에 샌드위치와 과일 샐러드를 싼다.
-219-
학창 시절 전 과목 수를 받던 수재가 사회에 나가서는 도대체 적응을 못하는 반면, 낙제생은 오히려 큰돈을 주무르고 다이아몬드를 척척 사며 수완을 발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히 여겨 본 적은 없는가? 심지어 낙제생 출신이 응용 의학 분야에서인가 노벨상을 수상한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은 요행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교실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현실에서는 헛되고 몽매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221-
실제로 토니는 교양은 부족하지만 현실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으며, 나의 관점에서는 존 박사보다 사회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더 과학적인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221-
이러한 아이디어는 최근 국방부의 여러 집단에서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것(unknown unknown)-우리가 아는 미지의 것(known unknown)이 아니라- 이라는 표현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224-
루딕 오류란 무엇인가? 루딕이란 용어는 '게임'을 뜻하는 라틴어 'ludus'에서 가져온 것이다.
-224-
도박이란 '도박장에서만 통하도록 거세된' 불확실성이라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카지노에서는 확률 계산도 가능할뿐더러 불확실하게 발생하는 사건의 유형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의 규칙은 참을 만하다.
-224-
수식화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우스 정규분포곡선이 아니라 만델브로적인 것이다.
-226-
이들의 확률 개념은 시종일관 모호한데, 이 모호함이 곧 자연계의 불확실성과 일치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226-
카지노마다 도박 이론에 바탕을 둔 정교한 감시 장치를 유지하느라 수억 달러씩 써대지만, 정작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엄청난 위험이 터지고 있는 것이다.
-229-
그러나 당신은 오히려 박식이라는 것이 자의적이고 인위적인 개념이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상대가 말뜻을 모르면 당신은 자신이 리무진 운전사라고 말해 준다. 그제야 당신은 홀로 있을 수 있게 된다.
-230-
에코의 서재에서 우리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은 무시되는 속성이 있다.
-231-
검은 백조 사태를 겪고도 거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이유는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 우리에게 추상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231-
손에 잡히는 것, 이론에 들어맞는 것, 감지할 수 있는 것, 현실로 나타나는 것, 눈에 보이는 것, 구체적인 것, 알려진 것, 인정되는 것, 생생한 것, 사회적인 것, 주어져 익숙한 것, 감정을 자극하는 것, 눈에 뜨이는 것, 전형적인 것, 유식하게 들리는 것, 목에 힘주고 다니는 가우스적 경제학자, 숫자로 꾸며진 헛소리, 허풍, 아카데미 프랑세즈,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노벨상, 검은 정장과 흰색 셔츠에 페라가모 넥타이를 맨 사람,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 선정적 이야기 등등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다.
-231-
무엇보다 우리는 잘 짜여진 이야기를 선호한다.
-232-
우리는 이미 발생한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일어날 수 있었을지 모르는 일은 무시한다.
-232-
요컨대 우리의 천성은 피상적이고 표피적일 뿐 아니라, 그러한 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232-
달의 뒤편은 보이지 않는 법이므로 달을 향해 아무리 빛을 쏘아 보아도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빛을 쏘이는 것도 헛된 계산과 사고 때문에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다.
-232-
우리가 세계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는가를 보여 주는 진짜 시금석은 이야기 짓기가 아니라 예견이다.
-233-
이 장의 화제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를 과시하며 오만해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분명히 적지 않은 것을 안다. 그렇지만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을 뿌리 깊이 하고 있다.
-240-
둘째, 이러한 오만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240-
왜 우리는 중요한 사건에 대한 예측이 (거의) 대부분 틀렸다는 사실을 보지 못할까? 나는 이것을 예견의 스캔들이라 부른다.
-240-
분명 우리 지식은 증가한다. 그러나 그보다 지식에 대한 확신이 더 증가함으로써 문제가 심각해진다. 지식이 늘어남과 동시에 혼동과 무지, 자만이 늘어나는 것이다.
-241-
인식론적 오만은 두 가지 효과를 발휘한다. 첫째, 이것은 알고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게 한다. 둘째, 실현될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이 분포할 범위를 줄임으로써(즉 알지 못하는 것의 범위를 축소시킴으로써) 불확실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244-
문제는 인간의 사고방식이 매우 경직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한번 이론을 만들어 내면 좀처럼 마음을 바꿔 생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오히려 자기 이론을 만드는 일에 늦는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249-
우리가 불충분한 증거에 입각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자. 이때 새로운 정보가 더 정확한 것이라고 해도, 기존의 견해와 모순되는 새로운 정보가 출현하면 쉽게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앞서 제5장에서 보았던 확인 편향의 오류, 둘째는 믿음 고수, 즉 한번 형성된 견해를 뒤집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생각이라는 것도 일종의 소유물처럼 여기기 때문에 한번 형성된 생각과 이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249-
주간지를 읽는 것보다 라디오 뉴스를 매시간 듣는 것이 더 나쁘다. 외부 정보가 주어지는 간격이 짧을수록 이를 걸러 내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250-
먼저 폴 밀과 로빈 도스의 연구로 대표되는 입장에서는, '전문가'란 거의 사기꾼 수준에 육박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수식 하나로 움직이는 컴퓨터보다 나을 바가 없는데, 여기에 직관이 개입되어 그들의 눈을 가려 버린다(단순 수식 하나로 구동되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계산한 부채 대비 유동자산 비율이 신용분석가 대부분이 계산한 것보다 나았다고 한다).
-252-
'방법을 아는 것(know-how)'과 '어떤 것을 아는 것(know what)'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차이를 '테크네(techne)'와 '에피스테메(episteme)'로 구별한 바 있다.
-252-
간단히 말해, 변화하는 분야, 그래서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대체로 전문가란 나올 수 없다. 반대로 변화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전문가가 나올 수 있다.
-253-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미래를 다루는 분야, 그리하여 결코 되풀이될 수 없는 과거를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전문가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사회경제적 분야가 아니라 단기간의 물리적 과정을 포함하는 기상이나 산업 분야에서는 예외이지만).
-253-
전문가의 문제란, 자신들이 무엇을 아지 못하는지를 모른다는 데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들의 지식 수준이 높다고 착각하기까지 한다.
-254-
경제 분야의 예측가들은 실제 수치와는 엉뚱하게 다른 값으로, 비슷비슷한 전망을 내놓는 경향이 있다. 아무도 저 홀로 다른 수치를 내놓기를 원하지는 않는 것이다.
-257-
테틀록의 연구는 전문가들의 무능함을 입증하려 하기보다는(분명 그러한 내용이 드러나 있긴 하지만), 어째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무능함을 깨닫지 못하는지, 즉 어떻게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지를 밝혀내려는 데 더 초점을 두고 진행된 것이다. 이들의 무능함에는 일정한 논리가 내재해 있었는데, 대부분 신념이라는 형식을 취하거나 자부심이라는 방어기제로 나타났다. 테틀록의 연구는 이들이 어떻게 사후 합리화를 해내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분석하고 있다.
-260-
여기에는 좀 더 일반적인 맹점이 숨어 있다. 이 '전문가'들이 편벽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예측이 옳게 나타났을 때에는 그것이 자신들의 식견과 전문적 능력 덕택이라고 자부하지만, 예측이 틀렸을 때에는 그것이 워낙 특이한 경우라서 자신들이 비난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 사실 이런 습성은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한 기제라고 할 수 있다.
-262-
우리 인간은 임의적인 사건을 받아들이는 능력의 불균형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262-
JFK 공항에서
뉴욕의 JFK 공항에는 벽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잡지 가판대가 있다. 이 가판대는 인도 대륙 출신의 착실한 가족이 임대해서 운영한다(이분들은 의대에 다니는 아이들을 두고 있다). 이 가판대는 '교양 있는 사람'을 위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 주는 모든 것을 모아 놓은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낚시나 모터사이클 잡지 따위는 빼더라도 (재미를 주는 가십 잡지를 포함해서) 여기 꼽힌 잡지를 하나씩 다 읽으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인생의 절반쯤? 한평생?
안타깝게도, 이들 잡지에 담긴 모든 지식을 동원해도 내일 무슨 일이 일어 날지를 예측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얻을 수 없다. 실제로는 오히려 예측 능력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
-279-
예견의 문제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즉 인간의 본성과는 관련이 없으되 정보 자체의 속성에 기인하는 고유의 한계가 그것이다. 앞서 나는 검은 백조 현상에 세 가지 속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예견 불가능성, 파급의 막대함, 사후 합리화 등이 그것이다. 이제 예견 불가능성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280-
임원들은 바르셀로나, 홍콩 등 전 세계를 바삐 날아다니며 회의를 열었다. 항공 마일리지가 쌓일수록 말의 성찬도 풍성해진다. 당연하게도 이분들은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임원이 된다는 것은 (지적 판단을 담당하는-옮긴잉) 전두엽이 발달해서가 아니라 카리스마, 지루함을 참는 능력, 실타래처럼 얽힌 일정표대로 바삐 움직이는 능력 덕택인 모양이다. 한 가지 더, 오페라 공연을 관람해야 하는 '의무'도 추가된다.
-282-
앞 장에서 살펴본 인간의 인식론적 오만을 발견한 것은 이른바 우연의 결과다.
-283-
고전적인 발견 방식은 다음과 같다. 이미 알고 있는 바(말하자면 인도에 이르는 길)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예상 밖의 다른 것(아메리카 대륙)을 찾는다.
-283-
발견과 발명의 대부분은 우연의 산물(serendipity)이다. 우연의 산물이라는 말은 동화 <세렌딥의 세 왕자Three Princes of Serendip>를 쓴 휴 월폴의 편지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세 왕자는 "언제나 본래 찾던 것 대신에 다른 무언가를 뜻밖에, 혹은 기지를 발휘해서 발견했다."
-283-
요컨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 대신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명확한 것을 왜 이제 알게 되었을까, 감탄하게 되며 이 발견 때문에 세상이 뒤바뀐다는 것이다. 바퀴가 발견되었을 때 기자가 그 옆에 있었을 리 없겠지만, 단언컨대 그때 사람들은 (성장의 주동력이 된) 바퀴를 발견하려는 프로젝트를 시간표를 봐가며 수행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발명이 이와 마찬가지다.
-283-
프랜시스 베이컨 경은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는 대부분 예상 목록에 들어 있던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뒤안길에 놓여 있던" 것이라고 갈파했다.
-284-
베이컨만이 이런 지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디어란 수시로 솟아 나오지만 순식간에 사라지는 법이다.
-284-
약 50년 전 소설가 아서 케스틀러는 이것을 주제로 소설 <몽유병자 The Sleepwalker>를 썼다. 소설에서 발견자들은 마치 몽유병자처럼 잠결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어떤 결과에 이르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손에 잡힌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284-
우리는 행성 운동에 관한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이 갖는 의미가 당시 코페르니쿠스나 당대인들에게는 너무도 자명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그가 죽은 지 75년이 지나서야 권력자들이 천동설에 분개하고 나서면서 비로소 조명을 받았다.
-284-
2022/01
그런데 이 우주배경복사가 자주 포착되었는데도 증거를 찾던 과학자들이 이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다른 것을 찾던 사람이 이를 찾고, 그 발견자로 칭송받은 것이다.
-286-
예측 전문가들은 예기치 못한 발견이 몰고 올 급격한 변화를 내다보는 데 참단하게 실패할뿐더러 점증적 변화의 경우에는 오히려 변화의 폭을 실제보다 더 크게 잡는다.
-286-
독자 여러분이 지금 이 글을 모니터 스크린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도 변치 않는 장치, 즉 종이책으로 읽고 있다는 사실도 '디지털 혁명'을 운운하던 석학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고 있다.
-286-
인간이 달 착륙에 성공한 뒤 팬아메리카 항공은 달 왕복 비행 예매를 시도하기도 했으니, 이야말로 기업의 오만이라 할 수 있다. 참으로 멋진 예견이었지만, 정작 팬아메리카는 자신들이 곧 문을 닫으리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팬아메리카 항공은 1991년 파산했다-옮긴이).
-286-
도구는 뜻밖의 발견을 가져다주고, 그것은 또 다른 뜻밖의 발견으로 우리를 이끈다.
-287-
그렇지만 도구가 그 목적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식의 증대는 장난감과 기계 만들기를 즐기는 엔지니어의 취미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287-
우리는 장난감을 만든다. 그 장난감 가운데 일부가 세상을 바꾼다.
-288-
많은 사람들이 신기술을 엉뚱한 곳에 응용하면 나쁜 결과가 나올까 우려하지만, 기술은 이 덕택에 번성한다.
-289-
이 생명공학 회사는, 공공연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파스퇴르의 금언을 암묵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위대한 발견은 우연한 발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파스퇴르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우연을 최대한 자주 만나려면 찾고 또 찾는 길밖에 없다. 기회를 쌓으라, 그리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라.
-289-
어떤 기술이 확산될지 여부를 내다보는 것은 유행과 사회 조류를 예측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기술 자체의 객관적 효용과는 무관하다(객관적 효용이라는 동물이 따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많은 쓸모 있는 아이디어들이 사라져 버렸는가? 세그웨이라는 전기스쿠터가 그 예로, 처음에는 이 탈것이 도시의 풍경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예견되었다.
-289-
예견이 가능하다고 예견할 수 있는가?
-289-
포퍼의 관심은 역사적 사건을 예견한다는 것의 한계, 역사학이나 사회과학 같은 말랑말랑한 분야를 미학이나 나비 수집이나 동전 수집 같은 취미 바로 위로 격하시킬 필요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포퍼 역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고전을 공부한 사람이라 미학이나 오락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아미온 출신인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여기서 말랑말랑한 역사학이라 부르는 것은 서사에 종속된 역사 연구들이다.
-290-
포퍼의 핵심적 주장은, 역사적 사건을 예견하려면 기술적 진보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지만, 기술적 진보란 근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90-
통계학에는 반복 기대값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거칠게 풀자면 이렇다. 우리가 미래의 언젠가 어떤 일을 예상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한다면, 지금도 예상할 수 있다.
-291-
예견이 가능할 정도로 미래를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미래에 속한 요소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291-
어떤 발견이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상태라는 풀이다.
-291-
해법이 존재한다는 정보 자체가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292-
우리는 늘 최종적인 지식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비웃는 과거의 사회에서도 같은 식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293-
우리는 타인의 결함을 찾아내지만 우리 자신의 결함은 보지 못한다.
-293-
이런 분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앙리 베르그송이나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사람들은 대개 유행의 산물일 뿐 수백 년 동안 계속될 영향력이라는 면에서는 푸앵카레의 근처에도 가기 힘들다고 설명하기는 참으로 난감하다.
-295-
태생과 행동거지가 워낙 귀족적이다 보니 푸앵카레가 상대성이론이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항변을 하지 않은 것이다.
-297-
푸앵카레는 스웨덴의 오스카 국왕 6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수학자 괴스타 미타크 레플러가 조직한 한 수학 경연대회에 논문을 보냈는데, 태양계의 안정성에 대한 이 논문으로 그는 오스카 국왕상을 수상했다(당시 오스카 국왕상 수상은 오늘날의 노벨상에 맞먹는 과학자 최고의 영예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출판을 앞두고 논문의 교정을 맡았던 수학 편집자가 계산 오류를 발견했는데, 이 오류를 수정하자 정반대의 결론, 다시 말해 태양계의 예측 불가능성을 증명하는 논문이 되어버렸던 것이다(이것을 전문 용어로는 비가적분성이라고 한다).
-298-
푸앵카레의 논리는 단순하다. 우리가 미래를 투시한다고 했을 때, 오류율이 급속히 증가하기 때문에 모델 속의 역학에 대한 정밀 측정값을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러나 예견이 어긋나는 정도가 급속히 커지기 때문에 거의 무한대 수준으로 과거를 분석해 내야 하므로, 정밀한 값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298-
푸앵카레는 일명 '3체 문제'라는 유명한 주제를 제시하고 이를 명쾌하게 보여주었다. 태양계에 행성이 단 두 개뿐이고, 이 두 물체의 궤도에 영향을 주는 다른 천체가 전혀 없을 때, 두 행성의 움직임은 무한히 예측할 수 있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두 행성 사이에 예컨대 혜성과 같이 매우 작은 크기의 세 번째 천체를 추가한다고 하자. 이 세 번째 물체는 처음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 번째 물체가 다른 두 천체에 미치는 영향은 폭발적으로 커진다. 극히 작은 물체가 빚어내는 작은 차이가 거대한 행성들의 미래에 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298-
역학적 조건에 미세한 복잡성이 추가되기만 해도 예견은 극히 어려워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행하게도 이 '3체 문제'보다 비할 바 없이 복잡하다. 이 세상에는 세 개 이상의 물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298-
우리는 일명 동역학계를 다루어야 한다. 게다가 앞으로 보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동역학계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298-
[캐털리스트] - 조나 버거 THE CATALYST (0) | 2021.06.01 |
---|---|
[블록체인 혁명] - 돈 탭스콧, 알렉스 탭스콧 (0) | 2021.05.31 |
[언씽킹 Unthinking] - 해리 벡위드 (0) | 2021.04.11 |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0) | 2021.04.08 |
[절대 가치] -이타마르 시몬슨, 엠마뉴엘 로젠 (0) | 2021.02.09 |
댓글 영역